[나명반]‘쇼팽이 묻고 조성진이 답했다’ 스케르초 2번

입력 2021-06-27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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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쇼팽은 평생(그래봐야 39년을 살았다) 4곡의 스케르초를 작곡했고, 이 작품은 그 중 두 번째(가장 유명하다) 제2번 b플랫단조 Op.31이다. 쇼팽은 이 스케르초를 1837년에 썼는데, 이 해에 쇼팽은 실연과 새 연인의 등장이라는 사랑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예술가, 특히 작곡가에게는 최고의(?) 한 해였던 셈이다.

어쨌든 쇼팽은 이 해 7월에 사랑했던 연인 마리아 보진스카의 집안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받는다. 이유는 쇼팽이 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실연의 고통과 무너진 자존감. 다행히 쇼팽의 좌절 시기는 길지 않았다. 저 유명한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1838년 4월 상드의 사랑고백과 함께 첫 키스를 나누게 되는데(기록이 참 자세하게도 남아있다), 사랑의 감정은 이미 1937년부터 싹트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두 번째 스케르초는 파혼을 당한 후 조르주 상드와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기간에 작곡됐다. 그래서인지 이 곡에는 쇼팽의 슬픔과 분노가 서려있다는 해석이 주류이다.
스케르초라는 장르 자체가 농담, 해학을 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곡은 블랙코미디 또는 어쩐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스토리를 들려준다.

이 곡을 듣는 재미 중 하나는 질문과 답변의 구조다. 처음의 불길한 셋잇단음표 연타가 가볍지 않은 인생의 질문을 던지고, 이어 질문에 대한 답이 연주된다. 늘 질문은 유사하거나 동일하지만 답변은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조성진은 확실히 ‘조성진만의 쇼팽’을 완성해 놓은 연주자다. 쇼팽콩쿠르 우승자들은 모두가 쇼팽의 스페셜리스트였지만 쇼팽의 음악에 대한 접근은 방향도 방법도 달랐다.
매우 지적인 분석과 논리로 쇼팽을 파헤친 연주자(다행히 많지는 않았다)가 있는가 하면 쇼팽을 감성의 완전체로 여긴 연주자도 있었다. 쇼팽이 작품을 작곡했던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까지 복원하듯 살린 연주의 경우는 꽤 흥미로웠다.

이에 비해 조성진의 쇼팽은 이미지가 선명한 편인데, 이 이미지는 조성진이 만들어낸 개인적 환상이라기보다는 이 곡을 작곡하는 동안 건반 위에 손을 얹은 쇼팽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와 동일하지 아닐까 의구심을 들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조성진의 쇼팽을 듣고 있으면 마치 시간을 건너 뛴 거울 저편의 이미지가 손으로 만져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스케르초가 시작되자마자 쇼팽이 던진 질문에 대한 조성진의 대답은 3:40 타임부터 시작되고, 이는 5:00에 반복된다. 조성진이 두 손으로 빚어내는 반투명의 신비로운 음색(드뷔시 연주에서도 느낄 수 있는)을 듣다보면 오른손의 급격한 아르페지오로 이어진다.
질문에 대해 조성진은 모호한 음색, 단호한 어조로 대답한다. 에두르는가 싶지만 결코 숨김이 없다.

사라져버린 행복, 메마른 논처럼 갈라진 마음, 비틀거리는 두 다리, 비아냥거림과 독설로 가득한 혀. 하지만 쇼팽은 조성진의 두 손을 빌어 단호하게 외친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새로운 사랑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고.
결핵을 앓던 20대 후반의 청년 쇼팽은 거칠고 무섭게 건반을 두드리며 굳어져가는 영혼의 심장을 압박해댄다.

7:25의 점차 느려지는 끝은 마치 쇼팽의 혼잣말처럼 들린다. 스스로에게 확신을 심듯 느려지면서 조용히, 조성진의 손가락 끝으로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다.
총 연주시간 9분 47초.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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