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이제는 리부팅이 필요한 여자배구대표팀

입력 2021-08-09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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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가 2020도쿄올림픽에서 남긴 감동과 여운은 오래 가겠지만 잔치는 끝났다.

이제 대한민국 배구는 2024파리올림픽을 위한 준비를 발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래도 꼭 선택해야 하는 길이다. 지난 8일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뒤 김연경은 대표팀 은퇴의사를 밝혔다. 기량과 차지하는 상징적인 위치를 봤을 때 여전히 대표팀에 김연경이 필요하지만 더 이상은 잡아둘 명분이 없다. 놓아줘야 마땅하다.

지난 15년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그를 붙잡고 더 뛰어달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다.

김연경 뿐만이 아니다. 도쿄올림픽 대표선수 가운데 김수지, 양효진, 오지영, 염혜선, 김희진 등은 30대다. 이들 또한 오래 태극마크를 위해 봉사했다. 더 대표팀에서 뛰겠다는 의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들에게도 대표팀 은퇴의사는 물어봐야 한다. 지금 당장 이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기보다는 과감하게 리부팅을 선택해야 한다.



3년 뒤 올림픽 본선진출을 경쟁할 국가들도 벌써 발 빠른 행보에 나섰다. 일본은 20대 초반의 주전 세터와 윙 공격수로 도쿄올림픽 본선을 치렀다. 나카다 구미 감독을 교체하고 새 사령탑이 대표팀의 틀을 다시 짤 것으로 보인다. 태국은 도쿄올림픽에 나가지 못하자 황금세대라 불리던 선수들을 모두 대표팀에서 은퇴시켰다. 리우올림픽 우승팀 중국은 도쿄올림픽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을 경험했다. 랑핑 감독은 퇴진했다. 주전의 교체가 예상된다.

우리는 리부팅에 바탕을 둔 세대교체와 함께 또 다른 숙제도 풀어야 한다. 새 대표팀이 어떤 배구를 할 것인지를 놓고 질문해야 한다. 그동안은 김연경이라는 한국배구의 축복 덕분에 필요가 없었던 고민이다. 김연경의 개인기량에 오랫동안 의지했지만 그가 떠나면 다른 방향의 배구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치열한 경쟁의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신체의 한계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조직배구다. 일본은 개인기량보다는 팀 전체의 힘을 높이는 배구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다른 성공모델은 브라질이다. 높이의 한계를 스피드와 개인기량으로 극복했다. 미국이나 세르비아처럼 장신의 대표선수를 구성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대표선수들의 능력이 판단의 기준이 되겠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확실해야 한다.



만일 현재 배구 인적자원이 그런 배구를 실현할 수준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도 찾아야 한다. 애써서 안에서 찾기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리면 된다. 외국의 유소년들을 발굴해서 우리의 방식으로 육성해서 대표선수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여자농구 결승전까지 진출했던 일본은 참조할 좋은 사례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혈통의 장벽을 없애고 대표팀의 문을 열어 전력을 보강했다. 이 밑그림은 대표팀을 주관하는 대한배구협회(KVA)가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색을 입히고 활력을 불어놓는 것은 한국배구연맹(KOVO)과 V리그다.

“선수 개인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프로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표팀 감독의 역할은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것”이라는 배구협회의 말은 맞다. 지금처럼 외국인선수에게 모든 것을 거는 V리그의 배구로는 토종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지지 않는다. V리그 감독들도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포스트 김연경’은 이제 현실이다. 그동안 대표팀은 올림픽을 기점으로 4년마다 물갈이를 해왔다. 김연경이 떠난 이후 한국여자배구는 어떤 배구를 해야 할지 이제부터 V리그 감독들이 담론의 장을 만들어 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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