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개통된 군산선 역사와 그 일대.
서울 신설동경마장보다 약 1년 빨라
1930년 하루 평균 마권 5000장 판매
2022년은 한국경마가 시행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마사회 말박물관은 100 주년을 앞두고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까지 한국 경마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군산 경마장의 발자취를 돌이켜 봤다.1930년 하루 평균 마권 5000장 판매
근대경마, 1922년 경마구락부에서 태동
한국경마는 학생 체육대회 수준의 나귀경주, 기병경주에서 시작됐다. 본격적인 근대 경마는 1922년 서울에 사단법인 경마구락부(클럽)가 발족하면서부터다. 이어 평양, 대구, 신의주, 부산, 군산 등에 차례로 법인이 인가됐다.
함흥, 청진, 웅기 세 곳에 경마장이 추가로 증설되며 전국 9개 경마장에서 순회경마의 시대가 1941년까지 지속됐다. 당시 기수들과 참가 말들은 봄과 가을 시즌에 맞춰 전국을 순회하며 경기에 참여했다.
성가의원에서 바라본 옛 군산경마장 터.
한반도 최초의 공인 경마 경주로는 전북 군산경마장이다. 기록에 따르면 옛 군산경마장은 지금의 군산동부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암동 지역에 위치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국내에서 수확한 쌀의 수출항구였기에 일본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일본인 상주인구가 많다 보니 이들을 위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등장하면서 경마도 실시했다.
1923년까지는 해안매립지에서 경마를 시행하다 당시 경장리(경암동)에 7만m² 규모로 경마장을 만들었다. 공인 규격의 고정 경마장도 군산과 서울이 다른 곳보다 빨랐다. 경주 시행 날짜로 보면 군산이 1927년 10월 준공기념 대회를 5일 동안 열었고, 서울 신설동경마장은 이듬해인 1928년 9월에 첫 대회를 열어 군산이 1년 앞선다.
군산 경마장은 1928년 첫 해 87두를 시작으로 1929년 147두, 1930년 161두가 경기에 출전했다. 1930년도 마권 발매는 총 4만9577매, 매출은 9만9354원으로 현재 원화가치로 12억2000만 원 수준이다. 봄과 가을을 합쳐 약 10일 정도만 경주가 열린 것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5000장 정도의 마권이 팔린 인기 스포츠였다.
군산경마장의 결말은 씁쓸하다. 1941년 일제가 미국 항공기의 착륙을 막기 위해 주로를 폭파하면서 경마장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됐다. 해방 이후 1945년 11월에는 미군이 주둔하다가 모닥불에 탄약이 폭발하면서 건물마저 화재에 소실되어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