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구속 채운 관록…삼성 백정현의 2021년은 온통 봄

입력 2021-09-08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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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정현. 스포츠동아DB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면 ‘늦게 핀 꽃’이지만, 한 시즌 단위로 쪼개면 ‘일찍 피고 지는 꽃’이었다. 스프링캠프 때 낳은 기대감을 정규시즌까지 이어가지 못했던 ‘만년 유망주’가 더 느려진 구속으로 오히려 힘을 내고 있다. 백정현(34·삼성 라이온즈)은 지금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다.


KBO는 8일 7~8월 월간 최우수선수(MVP)로 백정현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2007년 데뷔 후 첫 경사다. 좌완 백정현은 7~8월 6경기에서 38.2이닝을 소화하며 5승무패, 평균자책점(ERA) 1.16의 압도적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6월 5경기에서도 2승무패, ERA 0.88로 역투해 월간 MVP 후보에 올랐으나, 투표에서 아쉽게 밀린 바 있다. 백정현에게는 상금 200만 원과 함께 부상으로 75만 원 상당의 신한은행 골드바가 주어진다.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모교 대구중에는 선수 명의로 기부금 100만 원이 전달된다.


후보자들의 성적이 워낙 쟁쟁했기에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됐다. 해당 기간 5경기에서 30이닝을 소화하며 2승무패, ERA 0.30을 기록한 라이언 카펜터(한화 이글스·ERA 1위)는 물론 11경기에서 1승7세이브 ERA 2.31을 마크한 김원중(롯데 자이언츠·세이브 공동 1위)도 유력 후보였다. 25경기에서 타율 0.357로 타율, 안타, 득점 1위에 오른 황재균(KT 위즈)과 20경기에서 타율 0.286, 8홈런으로 장타력을 뽐낸 나성범(NC 다이노스)도 후보였다. 하지만 백정현은 기자단 투표 32표 중 29표(90.6%), 팬 투표 32만807표 중 15만9851표(49.8%)를 휩쓸며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한두 달 반짝 활약이 아니라 더 가치 있다. 백정현은 7일까지 올 시즌 21경기에 선발등판해 11승4패, ERA 2.54를 기록했다. ERA 전체 4위인데, 국내투수들 중에선 1위다.


시속 150㎞ 이상의 빠른 볼도,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주무기도 없다. 실제로 백정현의 올 시즌 포심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36.4㎞이며, 땅볼/뜬공 비율도 0.92로 뜬공이 더 많다. 넓지 않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를 홈구장으로 쓰는 투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요건이다. 그럼에도 특유의 타이밍 싸움을 통해 타자들과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좀처럼 공을 보여주지 않는 디셉션 동작 때문에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구속은 스피드건에 찍히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오키나와 커쇼’. 매년 스프링캠프 때마다 주목 받으며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와 비교됐던 백정현은 ‘봄의 사나이’였다. 정작 여름과 가을, 정규시즌에는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150㎞까지 찍히던 속구가 사라졌음에도 지금 그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최상위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21년 백정현에게 4계절은 온통 봄이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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