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인가 재앙인가’ … 포스트휴먼의 초상 [신간]

입력 2021-11-10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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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의 초상
(김세원 저 | 미다스북스)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인류 진화의 종착역일까.”

‘스스로 움직이는 또 다른 존재의 창조’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수만 년 문명의 역사 속에서 그 욕망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신화와 같은 이야기나 ‘투르크인’, ‘지남차(指南車)’와 같은 자동기계장치로 시작해 현재의 딥블루, 알파고, 소피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해왔다.

신을 대신해 생명 창조를 재현하려는 이 꿈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인류 진화의 종착역일까.”

이 책은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논의를 영화를 통해 제시한다. 인간을 가장 우월한 존재로 간주해온 근대 휴머니즘과 자체 진화를 주장하는 트랜스휴머니즘, 탈인간중심주의를 지향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을 비교하고 인공지능, 리플리컨트, 사이보그, 복제인간, 로봇 등 SF영화에 등장하는 탈인간적 존재들을 살펴봄으로써 미래 인간의 조건을 짚어본다.

1부에서는 로봇의 기원인 오토마타, 인간과 기계의 조합 사이보그, 인공지능의 역사를 살펴보고 유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주장을 살펴본다.

2부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립을 처음으로 그려낸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공지능컴퓨터 할9000부터 2020년 시즌2가 제작된 드라마로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다루는 ‘얼터드 카본’의 타케시 코바치까지 지난 50여 년간 제작된 주요 공상과학영화속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소개, 분석했다.

포스트휴먼은 현 인류보다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서, 지식과 기술의 사용 등에서 현대 인류보다 월등히 앞설 것이라고 상상되는 진화 인류를 의미한다.

포스트휴먼의 시대는 인간 자신과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대격변의 시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래에 적응하려면 고착된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낯설고 이질적인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도전의식과 개방성, 관련 지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노동에서 해방시켜주었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생활 곳곳에서 인간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인간과 기계의 엄격한 변별점은 모호하게 됐다.

이성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부여받았던 인간은 이성적 판단까지 가능해진 기계의 진화로 기계와 인간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지켜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기술발달 속도가 가속화될수록 인간이 미래에서 추방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인간은 최근의 발명품”이며, 이제 그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모든 기술 과학적 진보는 ‘인간 종의 변형’을 향해 맞추어져 있다. 근대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한계를 극복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면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트랜스휴머니스트는 현 인류의 생물학적 조건을 초월한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인간을 ‘트랜스휴먼(transhuman)’이라고 부르며 인간의 진화를 인간 스스로 디자인하겠다고 선언한다. 인류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현 인류의 종말과 트랜스휴먼의 등장 그리고 아직 그 모습이 흐릿한 포스트휴먼의 모습을 조금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상상하고 예측하는 ‘진화인류’의 모습이 어느 매체보다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구현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미래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더 예리하게 느끼고 깊게 사유할 수 있다.

포스트휴먼이 어느 날 불쑥 내 곁에 와 있기 전에, 아니 나 자신이 포스트휴먼 되기를 강요당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사전 대비를 한다면 적어도 첨단과학기술이 주도해가는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밝은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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