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김다인, 기다림 끝에 기적을 만들다!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1-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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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김다인. 스포츠동아DB

현대건설은 ‘도드람 2021~2022 V리그’ 정규리그의 절반인 3라운드까지 17승1패, 승률 0.944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11승19패로 꼴찌였던 팀의 대반전이다. 내친 김에 V리그 사상 2번째 트레블과 역대 최고승률에 도전한다. 목표는 2007~2008시즌 흥국생명의 24승4패, 승률 0.857이다.


새로 지휘봉을 잡자마자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강성형 감독은 “모두가 열심히 해준 덕분이지만 코트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세터 김다인(24)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이전에 밖에서 봤을 때는 경험 부족으로 선택과 분배에 문제가 있었지만, 경험치가 쌓이면서 점점 안정되고 있다. 순발력이 좋다. 세터 경력이 짧은데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배구천재”라고 칭찬했다.

무엇이 새로운 선수로 만들었나?

2021~2022시즌을 앞두고 강 감독은 김다인과 이나연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최종 선택은 김다인이었다. 이제 주전 세터로 2년차인 그에게 팀의 운명을 걸었는데, 그 선택은 성공했다. 거칠 것이 없는 현대건설의 야전사령관은 지난 시즌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김다인은 기술이 아니라 자신감과 여유를 먼저 들었다. “지난 시즌에는 내가 불안해서 공을 올리기에 급급했고 여유도 없었지만, 이번 시즌에는 한결 편해져서 동료들과 말도 많이 하면서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동료들과 언니들, 코치, 스태프에서 도와준다.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현대건설 김다인. 사진제공 | KOVO


김정아 전력분석관은 “지난 시즌과 기량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지난 시즌에는 실수가 나오면 스스로 위축되고 극복하지 못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이겨낸다. 계속 지켜보면서 기술적으로 보완해주는 김성현 전담세터코치 덕분에 마음에 위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선수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으면 편해진다. 지난 시즌에는 가끔 경기 도중 표정에서 힘든 것이 보였는데, 지금은 항상 밝은 표정이다”고 분석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지만, 세터는 동료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시즌 현대건설 동료들은 김다인에게 큰 힘이다. 현재 V리그 최고의 센터 양효진, 이다현과 함께하는 덕분에 어떤 속공과 시간차공격 연결에도 부담이 없다. 꾸준히 안정적인 리시브 효율을 기록해준 레프트 황민경과 고예림, 리베로 김연견도 김다인을 늘 도와주는 그림자들이다. 리시브가 흔들리거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언제든 득점이 가능한 외국인선수 야스민도 거들기에 김다인은 지난 시즌보다 세트 평균 수치가 2개 이상 많아졌다.

친구 따라갔다가 들어선 배구선수의 길

이제 성공의 문턱을 막 넘어서려는 김다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생의 문을 열었다. 1998년생 무인년 호랑이 띠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를 따라 훈련장에 갔다가 우연히 배구를 접했다. 당시 추계초등학교에는 친구의 삼촌이 총감독으로 있었다. 친구의 삼촌은 김다인을 보자 “너도 한 번 달려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달리고 운동하는 것이 좋았던 김다인이 날렵하게 뛰자 “너 배구 한 번 해봐라”고 권유했다. 배구선수의 길로 들어선 계기다.


10대 소녀가 프로선수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진학한 중학교 팀에선 입에 담기 민망한 사건이 터졌다. 팀은 와해됐다. 세화여중으로 전학했다. 고교 때도 문제가 생겨 선배들과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동기가 이솔아와 우수민, 1년 선배가 김현정과 이호빈이다. 주전 세터가 전학을 가자 코치는 “네가 한 번 세터를 해봐라”고 권유했다. 2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수비형 레프트와 리베로가 김다인의 역할이었다. 팀 사정상 시작한 세터는 쉽지 않았다. 그의 공을 때려줄 선수가 없었다. 결국 전학을 선택했다. 서울에서 자란 김다인이 물설고 낯선 포항으로 내려간 이유다.


2017~2018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현대건설의 2라운드 4순위 지명을 받자 포항여고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역신문에도 기사가 났다. 포항여고 배구부가 3년만이자 6번째로 배출한 프로선수였다. 당시 그를 지명했던 이도희 감독은 “다른 것보다 구질이 좋아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프로선수의 꿈을 이뤘지만, 감독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고 주문했다. 세터 경력이 짧은 데다, 전문기술을 배울 기회마저 드물었기에 당연했다.

현대건설 김다인. 스포츠동아DB

세터는 기다리고 실패하면서 성장한다!

선택받는 숙명의 선수, 특히 세터는 프로팀에 입단하면 기다림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도희 감독이 그에게 신경을 쏟을 여력은 없었다. 오랫동안 팀을 지켰던 염혜선이 자유계약(FA)으로 떠났다. 당장 팀을 이끌 세터가 필요했던 감독은 속성과외를 택했다. 2017~2018시즌부터 3시즌 동안 이다영에게 3000개가 넘는 세트를 기록하게 하며 쉼 없이 출전시켰다. 이다영의 강제육성기간과 겹친 2018~2019시즌 김다인은 단 한 번도 코트에 들어가지 못했다.


“제대로 뛰지 못했던 동안 힘들 때도 많았다. 프로세계에서 내 실력이 없었기에 이러리라는 것을 알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이 힘들어서 배구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다. 2년차에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프로에서 뛸 실력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좌절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냈다. “가장 높은 프로무대에서 백업이라도 자리를 걸치고 있으면 무언가 배울 것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견뎌냈다. 그나마 비시즌 때는 이다영 선배가 대표팀으로 오랫동안 팀을 비워 개인훈련을 많이 받은 것이 도움이 됐다.”

현대건설 김다인. 스포츠동아DB

호랑이띠 김다인의 2022년 소망

2019년 KOVO컵 때였다. 이다영이 빠진 가운데 이도희 감독은 김다인에게 원포인트 과외를 시켰다. 두려워서 백패스도 제대로 못하던 선수는 KOVO컵에서 처음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시즌에 들어가선 또 기다렸다. 감독은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마침내 프로 데뷔 4년 만에 기회의 문이 열렸다. 이다영이 FA 자격을 얻어 흥국생명으로 떠났다.


2020~2021시즌. 처음 경험하는 주전 세터 역할은 힘들었다. 공교롭게도 팀은 최하위로 떨어졌다. 패배의 책임은 자주 세터에게 갔다.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내가 불안하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고 김다인은 기억했다.

단단한 선수가 되려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경험과 시간도 필요하다. 프로 5년차이자 주전 세터로 2시즌째를 맞은 2021~2022시즌. 마침내 새로운 것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짧지만 대표팀에도 다녀왔다. 배운 것이 많았다. 2021년 KOVO컵에서 또 우승컵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매일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김다인은 “이번 시즌은 끝까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

수원 |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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