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의 수(數)포츠] 우먼파워는 어디까지 왔나 (하)

입력 2022-03-1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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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선수가 경기력으로 맞붙으면 대부분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인기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여자 선수, 여자 종목의 강세가 두드러진 곳도 많다. 지난해 KLPGA 투어 상금왕 박민지(왼쪽), LPGA 투어 상금왕 고진영이 대표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츠에도 이데올로기가 있다. 스포츠 수학을 한다면서 이념까지 끄집어내니,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들을 때처럼 머리가 아파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은 심플하다.

○상금 규모부터 살펴보자.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서울마라톤은 세계육상연맹(WA)이 인증하는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라벨 대회다. 규정에 따라 남녀 순위 상금을 똑같이 책정한다. 8만 달러(약 1억 원)를 받는 남녀 1위 기록은 보통 20분 이상 차이가 난다. 스포트라이트는 남자 우승자에게 집중된다. 그래서 조직위는 기록 보너스로 남녀 차이를 둔다. 이른바 수정 사회주의다. 테니스는 남녀 차이가 전혀 없다. 남자는 5세트, 여자는 3세트로 승부를 가린다. 누군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페미니즘의 완결판이다.

○골프는 철저하게 시장 논리를 따른다. 미국프로골프 상금은 남자가 여자보다 몇 배로 많다. 올해 발표된 대회 평균 상금은 1027만 대 252만 달러로 4배차. 남자 대회(47개)가 여자(31개)보다 많다 보니 전체 상금은 4억8260만 대 8570만 달러로 약 6배 차이가 난다. 그러나 지난해 여자 상금왕 고진영은 약 43억 원을 벌어 존 람(약 95억 원)을 추격했다. 이에 비해 국내프로골프는 지난해 대회 평균 상금(9억2000 만 원)과 우승 상금(1억3700만 원)이 거의 같다. 다만 대회가 여자(31개)가 남자(17개)의 2배에 가깝다. 따라서 전체 상금은 284억 대 156억 원으로 여자가 훨씬 많다. 지난해 여자 상금왕 박민지는 15억2100만 원을 벌어 김주형(7억5500만 원)을 압도했다. 국내에선 남자가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선 남자 시니어 대회 인기와 상금 규모가 여자 대회에 비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국내 남자 시니어 대회는 아직 그들만의 리그다.

○순수할 것만 같은 스포츠에서 왜 이런 남녀 차이가 생겼을까. 올림픽정신으로 대표되는 아마추어리즘과 자본주의가 이끄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차이다. 대체로 유럽 스포츠는 남녀 혼성종목을 한 개의 위원회가 통합 관리한다. 정점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있다. 테니스는 프로가 활성화된 뒤에도 남녀 메이저 대회를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연다. 상금이 같을 수밖에 없다. 반면 골프는 영국에서 시작됐어도 여성의 진입 장벽이 높았다.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PGA와 LPGA로 분화됐다. 농구도 비슷하다. 이에 비해 축구, 야구, 아이스하키 등은 여자 대회가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어서 서로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종목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피겨스케이팅은 기록이 아닌 채점 종목이지만 선수는 자신이 연기할 기술과 난이도를 직접 고르고, 심판은 그에 따른 배점에 가점과 감점을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남녀 비교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는 228.56점을 받았다. 남자 싱글 우승자인 에반 라이사첵이 받은 257.67점의 88.7% 수준에 불과하다. 김연아는 남자들과 함께 겨뤘다면 9위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세계를 매료시켰다. 점수가 높은 8명의 남자 선수는 비교도 안 될 돈방석에 앉았다. 남자가 아무리 운동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금남의 벽은 존재한다. 리듬체조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은 남자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혼성종목에선 여자가 남자에게 도전하는 성 대결 시도가 있어왔다. 골프가 대표적이다. 베이브 자하리아스는 1945년 PGA 로스앤젤레스오픈에서 컷 통과를 했다. 아쉬운 것은 3라운드에서 부진하자 4라운드를 기권하는 바람에 최종 순위를 남기지 못했다. 이후 반세기도 더 지난 2003년이 돼서야 성 대결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수지 웨일리는 그레이터 하트퍼드오픈 출전권이 걸린 지역예선에서 우승했다. 타이거 우즈만큼 압도적 기량을 선보였던 안니카 소렌스탐은 초청선수로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14세이던 ‘천재 소녀’ 미셸 위도 183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장타를 앞세워 캐나다 베이밀스오픈에서 첫 도전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17세이던 2006년 아시안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2라운드 합계 5언더파 공동 17위로 컷(이븐파)을 통과했다. 선두와 14타차인 3언더파 공동 35위로 마감하며 7전8기를 이뤘다. 이에 앞서 박세리는 2003년 국내투어 SBS최강전에서 컷 통과 후 공동 10위에 올랐지만 코스가 짧은 데다 PGA 대회가 아니어서 빛이 바랬다. 최근에는 브리트니 린시컴이 2018년 바바솔 챔피언십에서 이글을 잡는 등 선전했지만 2라운드 합계 5오버파(컷 4언더파)로 높은 벽을 실감했다. 결국 정식 PGA 대회에서 여자 선수가 최종 순위에 든 경우는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여자 선수가 실패하는 이유는 홍일점 출전에 따른 중압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거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 대회 코스 평균 전장은 6500야드인 반면 남자는 7200야드에 이른다. 그렇다면 거꾸로 남자가 여자 대회에 청일점으로 출전한다면 우승할 수 있을까. 이렇게 흥미로운 질문을 그냥 내버려두면 수포츠가 아니다. 미국프로골프에서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지난해 남자가 296.2야드, 여자는 255야드 남짓(추산)으로 약 40야드 차이다. 남녀 코스 전장 차이인 700야드를 18홀로 나눈 38.9야드와 비슷하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각자 대회에서 비슷한 거리를 남겨두고 세컨드 샷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가 여자 대회 코스에서 친다면 40야드 앞에서 세컨드 샷을 하는 것이다.

○이대로면 젊은 타이거 우즈는 이변이 없는 한 백발백중 우승이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2006년 평균 306.4야드의 티샷을 날린 우즈는 100야드 안쪽 그린적중률(안타깝게도 이런 세분화된 기록은 2001년부터 집계돼 있다)이 무려 92.3%로 압도적인 리그 1위다. 이때 웨지 샷을 핀에 붙이는 평균 거리는 3.88m로 역시 1위다. 이 중 36%를 버디로 마무리했다. 파4 10개 홀에서만 최소 3언더는 보장된다. 파5 홀은 매번 버디 또는 이글을 시도할 것이다. 우즈는 드라이버 샷이 빗나가 러프에서 올리는 그린적중률도 61.2%로 역시 1위다. 티샷 페어웨이 안착률은 60.7%(139위)로 문제가 있지만 여자 대회 코스라면 3번 아이언 스팅어 샷으로도 충분하다.

○현 세계랭킹 1위 욘 람도 지난해 309야드 장타에 100야드 이내 그린적중률 87.8%, 핀에 평균 5.03m 거리에 붙일 수 있는 능력을 자랑했다. 이때 버디 확률은 15%로 파4 10개 홀에서 1.5언더를 예약한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63.7%로 우즈보다 낫다. 반면 이들에 맞서 여자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지난해 그린적중률 78.8%(2위), 평균 퍼트 29.6개(19위), 페어웨이 안착률 79.7%(13위)로 나무랄 데가 없지만 아무래도 힘겨운 경쟁이 예상된다. 파3 홀이야 어떻게든 맞춰보겠지만 파4와 파5 홀에서 차이가 날 게 분명하다. 결국 남자 세계 톱랭커라면 여자 대회에서 빅 트러블 상황만 피한다면 우승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수포츠의 결론이다.


장환수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angpab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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