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수연 별세…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입력 2022-05-0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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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얼굴’이자 원조 월드스타인 배우 강수연이 7일 영면에 들었다. 스포츠동아DB

국제영화제 휩쓴 ‘원조 월드스타’

뇌출혈 심정지…7일 55세로 사망
네 살 때 길거리캐스팅으로 데뷔
‘고교생 일기’로 하이틴스타 우뚝
베니스영화제 ‘씨받이’ 여우주연상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주연상
드라마 ‘여인천하’ 정난정역 잭팟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명언 회자
“관객에게 사랑받는, 연기 잘하는 예쁜 할머니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평생을 배우로 살고자 했던 ‘월드스타’ 강수연의 생전 바람은 못다 이룬 꿈이 됐다. 하지만 연기를 향한 고인의 열정과 사랑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숨 쉬고 있다.

5일 서울 강남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로 인한 심정지로 쓰러졌던 강수연이 쾌유를 바라는 영화관계자들과 팬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7일 오후 3시 별세했다. 향년 55세.

고인은 쓰러지기 며칠 전까지도 동료들과 함께, 이젠 유작이 되고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들은 고인이 연기에 대한 열정과 복귀를 앞둔 설레는 마음을 드러내며 다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돌이켰다. 아역배우로 데뷔해 하이틴스타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된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와 연기만을 생각한 ‘진정한 영화인’이라고 영화계는 기억한다.




●하이틴스타

1969년 우연히 영화관계자의 눈에 띄어 영화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고인은 동양방송(TBC) 전속 아역배우로 활약하며 약 1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1983년 KBS 1TV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우뚝 섰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성인 배우로 처음 출연한 영화 ‘고래사냥2’에 이어 2년 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가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고인은 청춘스타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서 비구니 역을 하며 촬영 중 삭발하는 강수연. 그는 “머리는 또 자라는 법”이라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삭발 장면은 한국영화사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손꼽힌다. 스포츠동아DB



●월드스타

하지만 ‘하이틴 스타’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여성배우로서 선택하기 쉽지 않은 작품과 역할로 끊임없는 이미지 변주에 나섰다. 대리모로 양반집에 들어간 뒤 버림받는 기구한 여성의 삶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는 연기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이 영화로 스물한 살 나이에 동아시아 배우 최초로 1987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의 타이틀을 얻었다.

2년 뒤 비구니 역을 맡아 삭발까지 감행한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는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연기대상

국제적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강수연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 주연작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훨훨 날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녀들의 저녁식사’, ‘송어’ 등 새로운 문법을 내세운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의 질적 확장을 이끌었다.

2001년 16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SBS ‘여인천하’로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선 중기'악녀' 정난정 역을 맡아 한겨울에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투혼을 과시해 2001년 연기대상을 안았다.


●진정한 영화인

2011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 이후 특별출연 형식으로 일부 작품에만 얼굴을 내비치며 숨고르기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2015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나서 3년간 헌신했다. 영화와 관련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던 고인은 후배들에게 늘 자존심을 강조하는 선배이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 등장했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폼)가 없냐”라는 대사는 후배들과 스태프를 살뜰히 챙겼던 고인의 말을 그대로 빌려 온 것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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