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흰 비단으로 묘사한 직소폭포는 30여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와 주변 경관이 어우러진 변산반도 최고의 비경이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선현의 자취 따라 떠나는 ‘풍류가 깃든 계곡’
한여름 피서여행에서 계곡과 바다는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갈등처럼 정답이 없는 선택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선조들은 청량한 숲과 맑은 물의 계곡에서 풍류를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전국에는 멋진 풍광과 함께 유서 깊은 사연을 간직한 계곡들이 곳곳에 있다. 청정 자연의 경치는 기본이고, 선비문화의 진수를 담은 정자부터 조선시대 대학자의 발자취까지 역사적 명소도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여름에 맞춰 선정한 ‘7월 추천 가볼 만한 곳’의 주제는 선현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풍류가 깃든 계곡’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절경 ‘봉래구곡’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의 봉래구곡은 약 20km에 이르는 하천지형 아홉 곳을 말한다. 1곡부터 5곡까지 왕복 2시간 남짓한 등산로가 있다. 6∼9곡은 1996년 부안댐이 완공되면서 물에 잠겨 갈 수 없다. 봉래구곡 여행은 5곡 봉래곡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봉래곡은 감입곡류(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로 도입부터 풍광이 범상치 않다. 4곡 선녀탕과 3곡 분옥담은 깊은 항아리 모양의 포트 홀이다. 2곡 직소폭포는 높이 30여m로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절경이다.
괴산 화양구곡의 2곡 운영담의 모습. 쪽빛 계곡물과 절벽의 바위가 어우러져 한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아홉 가지 경관 즐기는 ‘화양구곡’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괴산의 여러 계곡 중 명성과 역사를 따진다면 단연 화양구곡이 으뜸이다. 청천면 화양천 주변 약 3km에 흩어져 있는 계곡으로 계곡 물줄기를 따라 아홉 가지 경관을 즐기는 곳이다. 화양동입구사거리에서 출발하면 천천히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전 구간을 볼 수 있다. 8월 31일까지는 허가된 장소에서 물놀이도 가능하다. 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4곡 금사담, 5곡 첨성대, 6곡 능운대, 7곡 와룡암, 8곡 학소대, 9곡 파곶 등으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이 말년을 이곳에서 지내 만동묘와 암서재, 화양서원 묘정비 등의 송시열 유적이 있다.
●정선과 김정희가 극찬한 ‘수성동 계곡’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수성동 계곡은 한양도성 내에 있어 조선 왕족과 사대부, 중인이 자주 찾던 명소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는 이곳의 풍광을 그림과 시로 소개했다. 평소에는 건천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데 많은 비가 내리면 수성동 계곡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곳곳에 너른 바위가 있어 쉬었다 가기 좋고 산책로도 있다. 인왕산 자락길 전망대에 올라서면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 세종마을(서촌), 경복궁, 청와대 인근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릉계곡 여행을 시작하는 초입에서 만나는 숲에 둘러싸인 무릉반석과 조선시대 수륙대제를 지냈던 삼화사.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기암괴석과 폭포의 조화 ‘무릉계곡’
(강원 동해시 삼화로) 무릉계곡은 거대한 기암괴석과 장쾌한 폭포가 환상적이다.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약 4km의 계곡은 초입 무릉반석부터 눈길을 끈다. 옛날 묵객들이 자연에 감탄하며 남긴 암각서가 곳곳에 있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풍경이 수려하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는 쌍폭포도 이곳의 명물이다. 오르는 길이 조금 고달프지만 박력 넘치는 경관이 일품인 두타산 협곡 마천루와 베틀바위도 찾아가볼 명소다. 근처에 스카이글라이더, 오프로드루지 등 이색 체험 시설과 에메랄드빛 호수를 자랑하는 무릉별유천지가 있다.
●조선 정자 문화의 진수 ‘화림동 계곡’
(경남 함양군 서하면·안의면 일대) 함양은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로 자부심이 높은 고장이다. 이곳 화림동 계곡은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선비문화탐방로 2개 구간이 있는데 화림동 계곡의 백미인 거연정과 농월정을 잇는 1구간이 인기다. 계곡을 따라 숲길과 마을길을 거닐며 거연정,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등 7개 정자를 만난다. 양쪽 끝의 거연정이나 농월정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된다. 인근 개평한옥마을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일두고택을 비롯해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여럿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남계서원도 있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