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익 평역 ‘오디세이아: 그리스 신화의 원전’ 출간
‘난해함’ 걷어내고 ‘서사의 긴장감’ 살린 고전 평역의 결정판

미안하고 죄송하다. 교보문고에 깔리기 전에 그만 ‘비서(祕書)’를 접하고야 말았다. 대충 짐작 하시는 것, 그 근처에 있는 ‘혜택’이다. 그럼에도 ‘감동’은 ‘혜택의 찬스’를 넘어섰기에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김원익 평역의 ‘오디세이아 : 그리스 신화의 원전’(세창출판사)을 ‘영접’을 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더는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국내 번역 혹은 평역된 책이 수국 꽃송이처럼 많기 때문이다. 필자의 책꽂이에도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 교수의 책을 영접하면서 “또, 오디세이아야?”라는 혼잣말을 했다. 전편의 ‘일리아드’의 후속편, 의무감 혹은 일생의 대업완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짧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이 책은 감히(?) 고백하건데, 그저 그런 번역본이 아니라, 또다른 ‘김원익표 오디세이아’다.

서설이 길었다. 애피타이저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트로이 전쟁의 승리 이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간 망망대해를 헤맸던 영웅 오디세우스. 그의 처절한 사투와 인내를 다룬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가 출간됐다. 신화 연구가 김원익 교수의 손길을 거쳐 현대 독자들을 위한 평역 본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오디세이아: 그리스 신화의 원전’은 단순히 고전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전의 장엄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 한국어 산문으로 매끄럽게 풀어내 고전 독서의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 “노래하소서, 무사 여신이여”…원전의 숨결을 현대적 문체로
‘오디세이아’는 서구 문학사에서 유명한 도입부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노래하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를 함락한 후 귀향하다가 아주 오랫동안 바다를 떠돌아다녔던 능변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아마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문학도라면 알리기에리 단테의 서사시 ‘신곡’의 첫 문장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기억할 법한 ‘역사적인’ 도입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서구 문학의 뿌리이자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칭송받지만, 방대한 분량과 고어(古語) 섞인 운문 형식 탓에 완독이 어려운 책으로 손꼽혀왔다. 저자 김원익 교수는 이러한 난해함을 걷어내기 위해 ‘평역(評譯)’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평역, 쉽게 말해 원문을 단순히 글자 그대로 옮기는 것을 넘어 역자의 주관적인 해석, 비설, 비평을 덧붙여서 새로 쓴 것을 의미한다. ‘오디세이아’ 속에 ‘김원익의 세계관’을 녹여 썼다는 말이다.

그는 원전의 비유와 상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모험 소설을 읽는 듯한 속도감 있는 문체를 선보인다. 책 속에서 오디세우스가 파도 아래로 가라앉으며 고뇌하는 장면이나, 타향에서 자신의 과거를 노래하는 가인의 목소리에 오열하는 장면은 30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의 독자에게도 생생한 감동을 전한다.

● 지도·명화·계보도…입체적으로 즐기는 ‘신화의 세계’
‘오디세이아’의 내용은 생략하자. 웬만한 독자면 대충 알기 때문이다. 여타의 저서와는 달리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풍부한 시각 자료와 보충 설명이다. 오디세우스가 거쳐 간 방랑의 경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는 물론,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저자가 책을 펴낸 바 있다)를 바탕으로 정리된 신들의 계보도는 복잡한 신화적 인물 관계를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이 얼마나 ‘댕큐’한 일인가.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 스스로 도표를 정리하다, 하도 복잡해 포기한 독자가 필자를 포함해 꽤 많을 것이다.

또한, 서사 곳곳에 수록된 관련 명화들은 텍스트의 상상력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저자는 각 권의 도입부에 요약문을 배치하고, 에필로그를 통해 ‘오디세이아’가 후대 서양 문학에 끼친 영향력을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고전 읽기를 ‘총체적인 인문학 학습’으로 격상시켰다.

● 영웅이 아닌 ‘인간 오디세우스’를 만나다
이 책은 가장 큰 ‘특별함’은 오디세우스를 단순한 초인적 영웅이 아니라 계책과 지혜, 때로는 상실감과 폭력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복합적 인간’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는 점이다. 이를 테 신화 속 인물을 오늘날의 윤리적 질문 앞에 다시 세운다는 것이다. 필자는 저자의 ‘인간에 대한 사랑, 따뜻함’이 오디세우스를 인간의 영역으로 ‘초대’했다고 믿는다.
저자 김원익 교수(홍익대)는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오랜 시간 신화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야전’에서 ‘그리스 신화’를 대중화한 ‘전투병’이다. 대학의 강단에서, 작게는 동네 도서관의 ‘작은 강연’에서, 무대를 가리지 않고 지리적 원근을 따지지 않고 ‘그리스 신화’라면 어디든 달려가 ‘썰’을 풀었다. 그의 ‘썰’은 그리스의 신들을, 우리 가슴 속의 ‘친구’로 간직하게 했다. 김원익 교수의 내공이 집약된 이 책은, 2025년 세종도서로 선정된 그의 전작들과 궤를 같이하며 다시 한번 신화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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