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문병국 노조위원장
1992년부터 무려 32년을 고려아연과 함께 해 온 문 위원장은 착실히 내실을 다져온 회사가 하루아침에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데 대한 허탈함과 고려아연 노동자 및 근로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있다고 했다.
문 위원장은 “지금 40일 넘게 이 사태를 보면서 회사의 또 다른 중심인 노동자나 일터, 생계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고 경영권 얘기만 한다”며 “MBK는 경영권과 주주환원 정책만을 얘기하고 단순히 고용안전이라는 말만 무심하게 반복할 뿐 노동자의 일터와 생계는 안중에 없다”고 비판했다.
문 위원장은 고려아연에 대한 MBK의 적대적 M&A가 상식에 어긋난 행태라고 점도 지적했다.
그는 “보통 회사가 부실하거나 경영이 어려워야 사모펀드의 역할이 있을 텐데, 우리는 초일류이며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이라며 “또 98분기 흑자를 내고 있는 회사를 ‘경영을 똑바로 못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며 손에 넣겠다는 행태가 과연 맞는지 거기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탈탄소와 기후변화 등 산업격변기를 맞아 고려아연이 미래 신사업 추진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현 경영진이 아닌 영풍·MBK가 과연 이 같은 과업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했다.
그는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고려아연 경영진이 꼼수를 쓰려했다면 싫어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 50년간 그런 점은 없었고, 또 제2의 도약을 위해 트로이카 드라이브도 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고 이차전지 투자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철금속 제련업은 원료를 수입하다 보니 글로벌 환경변화에 따른 리스크가 크고 환경안전 투자 비용도 늘고 있어 영업이익률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환경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현 경영진이 추진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에 대해 노사가 많은 대화를 나눴고, 앞으로의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는 성장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만 직원들과 성과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문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37년 무분규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문 위원장은 “앞서 얘기한 부분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불협화음이 났을 것”이라며 “그간 임금 리스크 등 여러 사안과 쟁점들이 있었지만, 기업이 성장하는 속에서 그런 부분들을 채워왔기 때문에 37년 무분규가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영풍과 MBK에 대해선 자질 부족을 꼬집었다. 고려아연의 성장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 위원장은 “MBK는 제조업에 와서 회사 경쟁력을 키울 만한 조직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다, 전문경영인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고 주주 환원을 하고, 고용승계까지 다 하겠다’는 말을 믿을 수도 없다”라며 “이런 얘기는 사모펀드가 M&A를 하며 늘상 쓰는 레파토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또 “MBK가 돈을 차입해서 경영권을 가져온 거기 때문에 투자는 당연히 축소될 거고, 회사의 여러 알짜 자산이 결국 현금화돼 빠져나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영풍의 자질 문제도 지적했다. 문 위원장은 “영풍 석포제련소를 보면 답이 다 나와 있다. 석포가 현재 어떤가. 이런 영풍이 MBK와 연합을 해서 지금까지 월등하게 잘해온 초일류 고려아연을 더 뛰어나게 경영을 하고, 주주 배당을 높이고, 산업을 키우겠다고 얘기하는 걸 어떻게 믿나.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영풍의 석포제련소 현실이 그런데 몇 배나 더 큰 고려아연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울산 현장 직원들의 분위가 어떠냐는 질문에는 “직원들이 사실 굉장히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회사가 좋은 상태인데,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고 이걸 가져가려고 영풍과 MBK가 공격을 해오면서 결국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팽배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MBK가) 고려아연만큼은 그렇게 안 하겠다고 믿으라고 한다고 해서 믿을 수가 있나. 있을 수도 없는 얘기”라고 MBK의 과거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문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고려아연이라는 회사와 직원, 가족들이 지역에 기여하고 사회환원을 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어렵고 힘들 때 같이 손을 잡아주는 분들이 많은 것”이라며 “우리만 잘살겠다고 했었으면 이렇게 도와줬겠나. 서로 신뢰가 생기고 50년 넘게 함께 해온 면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움직여 주셨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울산 시민들과 정치권, 지역시민사회 단체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