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세대신인감독들,한국형스릴러“액션”

입력 2008-03-04 08: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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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스릴러 시대’가 열렸다. 연쇄 살인범과 그를 쫓는 전직 형사의 이야기 ‘추격자’(나홍진 감독)는 2월 14일 개봉한 뒤 첫 주말 할리우드 영화 ‘점퍼’에 밀려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웰 메이드 스릴러’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개봉 2주째 주말에 1위를 차지했으며 13일 만에 200만 명을 넘어섰다. 개봉 3주째 주말인 2일까지 이 영화를 본 관객은 285만 명. 2월이 극장가의 비수기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지난해 말 김윤진 주연의 ‘세븐데이즈’는 ‘스타일과 속도감이 있는 스릴러’라는 평을 받으며 210만 명의 관객을, 올해 1월 ‘더 게임’도 두 남자가 서로 뇌를 바꾸는 충격적인 콘셉트로 150만 명을 모았다. 스릴러가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취약한 장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의 변화다. ○ 작년부터 9편… ‘GP506’ ‘트럭’ 대기 ‘추격자’의 성공은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비교되고 있다. 두 편 다 신인 감독(봉 감독은 두 번째, 나 감독은 데뷔작)의 영화이며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김영진 교수는 두 영화가 가진 ‘한국적 특수성’에 주목했다. ‘살인의 추억’은 경기 화성 연쇄살인사건, ‘추격자’는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을 모티브로 삼아 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며 그 무능함을 조롱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이라는 농촌의 분위기, ‘추격자’는 자동차 한 대도 지나가기 어려운 서울 산동네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살렸다. 또 김 교수는 두 영화가 스릴러가 빠지기 쉬운 ‘반전 강박증’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살인의 추억’은 아예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계속 어긋난다. ‘추격자’는 처음부터 관객이 범인을 알고 시작하는 스릴러다. 두 편 다 장르의 관습을 비켜 간다. 한국 스릴러는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영화는 대부분 복합 장르여서 ‘스릴러’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스릴러 장르를 ‘추리극의 구조를 가지고 단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가며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볼 때 지난해부터 한국 스릴러는 붐을 이뤘다. ‘극락도 살인사건’ ‘검은 집’ ‘궁녀’ ‘세븐데이즈’ 등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고 ‘리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 동네’ ‘가면’ 등도 나왔다. 2004∼2006년 스릴러가 매년 서너 편에 불과했던 데 비해 최근에는 양적으로도 크게 늘어난 셈이다. 특히 올해에는 ‘더 게임’의 선전에 이어 ‘추격자’의 흥행이 스릴러 붐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에는 ‘알포인트’로 주목받은 공수창 감독이 최전방 부대에서 소대원이 몰살당한 사건을 소재로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GP506’이 개봉되며, 6월에는 코믹 이미지가 강한 배우 유해진이 스릴러 ‘트럭’으로 변신을 도모한다. 트럭 운전사가 우연히 살인마를 태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면’의 양윤호 감독은 이현세 만화 원작의 심리 스릴러 ‘개미지옥’을 준비 중이다. ○신인감독들 개성 표현에 제격…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뒷받침돼야 한국 영화계의 스릴러 붐은 나 감독을 비롯해 김한민(극락도 살인사건) 김미정(궁녀) 등 신인 감독들의 대거 등장이 가져온 결과로 분석된다. ‘영상 세대’로 불리는 젊은 감독들이 스릴러 등 장르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데다 이를 대중의 기호에 맞게 풀어내는 감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신인 감독은 무난한 드라마보다 콘셉트가 명확한 장르 영화를 내세워야 투자 유치가 쉬워진다는 이유도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스타 배우나 감독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면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도 흥행작을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 작년부터 개봉된 9편의 스릴러 가운데 ‘세븐데이즈’와 ‘가면’ ‘더 게임’을 제외한 6편이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요즘 스릴러 붐에는 ‘미드(미국 드라마)’ 유행의 영향이 크다”며 “선진국일수록 오락이 다양화하면서 두뇌 게임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생기고 이에 따라 스릴러가 인기를 끌게 된다”고 말했다. ‘24’나 ‘CSI’ 등 미드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이 짜임새 있는 구성에 새로운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 스릴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추리물이 발달하지 않아 스릴러로 만들 원작이 적은 편이다. 빈틈없는 구성이나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으면 한국 스릴러의 붐이 지속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최근 스릴러 중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은 대부분 직접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세븐데이즈’와 ‘더 게임’의 배급사인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신은호 PD는 “스릴러가 예전에 비해 잘되지만 장르의 문제라기보다 결국 관객은 기본에 충실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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