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의 조훈현 9단은 절대무적의 강자였다.
지금에야 하는 얘기지만 조훈현이 맹위를 떨치던 19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바둑계의 변방 취급을 받고 있었고, 실제로 바둑 선진국인 일본에 비해 기사들의 기량이 한 수 이상 처져 있는 입장이었다.
조훈현은 그런 일본에서 최고의 기재 대접을 받다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저 그런’ 일본 프로기사가 와도 외경의 눈으로 올려다보아야 했던 시절에 일본에서도 죽죽 잘 나가던 조훈현이 왔으니 오죽했을까.
조훈현은 부러움과 질시의 첫 대상이었고, 경쟁자들에겐 넘어설 수 없는 벽, 후배들에겐 영원한 도전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당시 조훈현과 국내 토종기사들과의 실력차이는 꽤 났다. 같은 프로라 해도 ‘호선’이 아니었다(정선, 심지어 2점설도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처럼 차이가 지는데 호선으로 두었으니 조훈현이 이기고 또 이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그렇게 천하에 상대가 없는 고독한 제왕으로 살았다. <실전> 흑1의 슬라이딩에 백이 2로 받았다.
흑3으로 들여다보아 백4로 잇게 하고는 5로 하변을 지켰다. <해설1> 흑1로 끼우는 수도 있다.
이것도 정석이다. 실전진행의 장점은 흑이 선수를 쥘 수 있다는 점이다. 조훈현은 이것을 원했을 것이다. <실전> 백6에 대해 이세돌은 국후 “좀 (타이밍이) 빨랐나 …”하고 후회의 빛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려 보인 그림이 <해설2>. 하변 백1로 다가선 뒤, 흑2에는 백3으로 젖혀가는 수순이다.
실전과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세돌로서도 확신을 갖고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 1974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