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우리 딸아이는 장난감 피아노를 하루 종일 끼고 삽니다. 월말이면 일이 많아서 남편은 집에까지 일거리를 싸들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삑삑거리는 딸의 장난감 피아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습니다.
두 부녀는 싸우는 날이 참 많았습니다. 하루는 도저히 그 소리를 견디지 못 하고 남편이 아이의 장난감 피아노를 빼앗아 방바닥에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장난감 피아노가 나동그라지며 한 귀퉁이가 부서졌습니다. 딸아이는 “으앙!”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몇 달 전, 딸아이가 마트에서 그 장난감 피아노를 사달라고 채근을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사줬습니다. 그 후로 딸아이는 인형이고 블록이고 다 제쳐 두고, 하루 종일 장난감 피아노만 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남편은 딸애가 쳐대는 그 피아노 소리를 제일 싫어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남편 일에 지장을 줄까봐 그 장난감 피아노를 빼앗아 선반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딸애가 자는 동안 그 장난감 피아노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딸애는 “내 피아노∼ 내 피아노∼” 하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전 저도 모르게 “피아노는 하늘나라에서 필요하다고 가져갔어. 이제 없을 거야” 하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날, 저는 귀신에 홀린 듯 그 부서진 피아노를 치고 있는 딸애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더니 딸애가 “아 이거∼ 하늘나라에서 치다 놓쳤나봐. 어떤 아저씨가 멀쩡한 거라고 나한테 줬어” 했습니다. 아마도 쓰레기 가져가는 아저씨가 누가 쓸 만한 걸 버렸다 생각하고, 저희 딸 손에 그걸 쥐어준 모양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저희 손윗동서에게 말씀드렸더니 형님은 “동서, 웬만하면 피아노 한 대 사주지 그래? 요즘 피아노 치는 애들 많잖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이십만 원 하는 물건도 아니고, 집안에 자리도 많이 차지하는데, 어떻게 선뜻 그걸 살 수 있겠습니까? 하여튼 장난감 피아노 소리에 살 수가 없다고 저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어느 날 형님이 멜로디언을 보내주셨습니다. 형님네 아이들이 쓰던 건데 이제 필요 없다고, 저희 딸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딸아이는 신이 나서 멜로디언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입이 닿는 부분은 닦아도 닦아지지 않을 정도로 낡게 변해버렸습니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딸애가 멜로디언 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자기도 해 보겠다며 한번 연주를 해봤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되게 힘드네. 계속 입으로 불려면 머리도 아프고 조금만 해도 어지러운데, 도대체 얘는 힘들지도 않나?”하며 딸애를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그 다음 날 저녁, 남편은 놀랍게도 피아노를 앞세우고 퇴근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혀 딸애를 안아주며, “민지야∼ 피아노 왔다∼ 이제 앞으로는 진짜 피아노 치며 놀아라∼” 했습니다. 제가 “아니 당신 어떻게 된 거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웬 피아노? 이거 비싸지 않았어?” 했더니 남편이 쑥스러운 듯 “오늘 월급 받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민지한테 피아노는 꼭 있어야겠더라고. 장난감이든 멜로디언이든 이렇게 좋아서 하루 종일 치는데, 차라리 진짜 피아노로 제대로 음을 들으면서 치면 좋잖아” 했습니다. 제가 돈이 걱정 돼서 쳐다봤더니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그랬습니다. “꼭 필요한데 쓴 거야. 앞으로 우리가 조금씩 덜 쓰면서 아끼면 되지 뭐!”라며 위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이 우리 민지의 미래를 위한 투자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이가 장난감 피아노를 칠 때 그저 시끄럽다는 생각만 했는데, 어쩌면 저희 딸이 나중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거나, 유명한 음악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도 끈덕지게 피아노에 매달리는 딸애를 보면서 저는 다음 달부터는 피아노 학원도 보내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아껴야겠지만, 저렇게 끈덕지게 피아노에 매달리는 딸을 보고 있으면, 정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기대를 해봅니다.
경남 진주 | 이미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