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엄마아빠의다급했던첫만남

입력 2008-08-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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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정에 내려갔습니다. 엄마 아빠는 아직 아옹다옹 하시지만 두 분이 서로를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져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아빠는 남자고 가장이라고 엄마한테 무게를 잡으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는 갑자기 예전에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아빠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30년 전, 그 해! 아빠는 군 복무 중이셨는데 마침 휴가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군부대에서 한참을 내려와야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한 시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휴가를 받았다는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꾸르륵 꾸르륵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거 빨리 어디 가서 볼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주변에 어디 화장실이 없을까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 멀리 보이는 언덕쯤에 수풀이 적당히 우거져 있었습니다. 얼른 뛰어가, 앞뒤도 재지 않고 얼른 군복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셨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를 어쩌나…. 어찌나 급했던지, 휴지가 없다는 걸 깜빡 하셨다고 합니다. 그 주변에는 호박잎 하나 없었고, 휴지 대용으로 쓸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늘이 보내주신 건지, 저쪽에서 어떤 아가씨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빠는 급한 마음에 고개를 쑤욱 내밀면서 그 아가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저기요. 저기…, 죄송하지만 혹시…, 혹시…, 휴, 휴지 좀 있을까요? 제가 너무 급한 나머지 실례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저, 저는요, 절대, 절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아가씨는 갑자기 수풀 사이에서 머리를 내밀고 말을 건 군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군인 아저씨가 너무 급해 보여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집으로 뛰어갔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빠는 정말 그 아가씨가 휴지를 가지고 올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가씨는 정말! 휴지를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아가씨는 휴지를 건네자마자 냅다 뛰어서 다시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아빠는 그 아가씨가 얼굴도 예쁜 데다가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뛰어가서 휴지까지 가져다 준 게 고마워서 그 집에 가서 일부러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너무 고마웠다고! 그런데…, 정말, 인연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요?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자꾸만 그 아가씨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또 다시 인사를 하러 갔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그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는 데 성공! 나중에는 결혼까지 하게 돼, 저희들이 태어났다는 겁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의 첫 만남은 이렇게 근사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약간 어색하고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전개됐다고 합니다. 두 분…, 지금까지 30년 동안 한결같이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 앞으로 30년도! 광주 남구|김자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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