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엄마큰손반만줄여주세요

입력 2008-08-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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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저와 딱 스무살 차이가 나는 친정엄마가 계십니다. 제가 서른이 넘으면서부터는 거의 자매지간처럼 보일 정도로, 친정엄마는 젊고 활발하십니다. 그런데 통 크고, 손 큰 걸로 따지면 저희 엄마가 세계 챔피언감입니다. 늘 풍족하게 음식을 하고, 물건을 사시고는 그 뒷수습하느라 제가 항상 고생합니다. 하루는 전날 회식 때문에 과음을 해 자고 있는데 엄마가 저를 막 깨우셨습니다. “미숙아, 얼른 일어나봐∼. 이거 좀 같이 하자∼. 아유! 갈치가 아주 싱싱하다, 야∼!” 저는 갈치라는 말에 “엄마! 내가 지금 그걸 어떻게 해∼! 그냥 잠 좀 더 자면 안 될까?” 했더니 엄마의 레퍼토리가 바로 시작됐습니다. “그래 잠이나 퍼 자라 퍼 자, 으이구! 저걸 자식새끼라고 낳아 가지고, 몇날 며칠 미역국을 먹고 있었으니, 내가 누굴 탓하겠어∼! 다∼내 잘못이야” 하셨습니다. 그 잔소리에 저는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당에 나가보니 은빛 찬란한 갈치가 무려 세 상자나 있었습니다. 결국 다 손질해서 냉장고에 딱딱 정리해 뒀습니다. 생선 뿐만이 아닙니다. 철마다 엄마 손에 들려오는 각종 과일들이며, 지난번 TV에서 아침밥 대신 떡을 먹으면 좋다는 말에 덥석 사들고 오신 찹쌀떡 덕분에 저희 집 냉장고도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입니다. 지난 번 엄마 생신 때는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갓 회사에 취직해서 아직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인데, 엄마가 대뜸 “딸∼, 이번에 취직도 했으니까 엄마 생일선물 큰 걸로 해줄 수 있지? 나, 벌써 동네 아줌마들한테 자랑 다 했다. 이번에 우리 큰딸이 옷 사주기로 했다고. 다들 부럽다고 난리야” 이러시는 겁니다.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벌써 자랑을 다 해놨다고 하시니 뭐 어쩝니까. 제가 취직해서 처음 만든 카드를 드리며 맘에 드는 걸 사입으시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싸구려는 안 사입으실 거니까 어느 정도 돈이 많이 나갈 것이라고는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현금을 찾을 일이 있어 은행에 갔더니 제 통장에 잔고가 0원이 되어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까 엄마한테 카드를 드리고 제가 다시 달라는 말을 안 했던 겁니다. 카드명세서를 보니 옷이며 신발이며 거기다 각종 생필품에 동네 친구분들하고 함께 드신 음식값까지 모두 제 카드로 계산을 하신 겁니다.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지만 엄마는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시고, 사온 옷을 제 앞에서 입었다 벗었다 하시며 “딸∼, 어때? 괜찮아? 이 색깔 이거 딴 걸로 바꿀까?” 이러십니다. 정말 우리 엄마는 아무도 못 말려요∼. 지난번에도 날 덥다고 국수 해먹자고 하시면서, 열무를 잔뜩 꺼내놓으신 거 있죠. 국수고 뭐고 그거 다듬느라 허리 빠질 뻔했습니다. 통 큰 엄마 때문에 답답하고 속상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어디 편찮으신 데 없고, 젊으시며 힘차게 살아가고 계시니까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엄마! 다음엔 좀 적당히 해요. 온 나라가 에너지 절약으로 난린데, 우리도 좀 아껴야 하지 않겠어요? 큰손을 반으로 줄여주세요!” 충북 진천|이미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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