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여자인내이름은박성오

입력 2008-1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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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는 이름들이 하나 같이 ‘끝순이, 옥분이, 말자’처럼 촌스러운 이름들이 많았습니다. 전 성격이 너무 순하다고 ‘순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제 이름도 촌스럽긴 매한가지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 당시에 제 이름이 나름대로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됐을 때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대뜸 “순단아, 넌 오늘부터 박순단이 아니고 박성오다” 라는 겁니다. 여태껏 ‘순단’이라고 불렸는데, 갑자기 ‘박성오’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자, 어찌나 놀랍던지 저는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제 마음도 모르시고 반 애들한테 “얘들아, 앞으로 순단이한테는 성오라고 불러줘야 해. 알았지? 순단이가 아니라 성오라고 불러야 한다”하면서 친절하게 설명까지 하셨습니다. 그 날 애들은 여자애 이름이 무슨 성오냐고 놀려댔고, 저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왜 이름을 바꾸느냐고 순단이라 해달라고 떼를 썼더니 아버지께서 그러셨습니다. “그동안 집에서는 순단이라고 불렀지만, 이제 학교에 갔으니까 호적에 올라간 이름으로 불려야 돼. 그래도 네가 서운하다면 집에서는 계속 ‘순단’이라고 불러주마” 하셨습니다. 하지만 호적에 올라간 이름이든 아니든 간에, 저는 성오라는 이름이 정말 싫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누가 제 이름을 부를까봐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얌전한 학생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제 이름을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이동통신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뭘 확인할 게 있다며 본인을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인이라고 했는데, 그 상담원이 “부인은 안 되시고요. 본인이셔야 합니다” 이러면서 한사코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주민등록번호까지 불러주면서 “박성오, 접니다!!” 확인을 시켜주기도 했답니다. 제 이름 때문에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는데, 하루는 세무서에 볼 일이 있어서 제 남편이 제 대신 가서 일을 봤습니다. 물론 아무도 본인 확인을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막상 찾아가서 제 볼일을 볼 때는 본인이 와야 된다고 해서, 신분증 보여주며 제가 ‘박성오’라는 걸 확인시켜준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이 식당을 하는데, 가게 명의가 제 앞으로 돼 있어서 명함도 제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명함만 보고 제 남편이름 인 줄 알고 “박 사장님, 잘 먹고 갑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사실 제 남편은 성이 이 씨입니다. 그런데 저희 가게 오시는 손님들 중에 저희 남편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처음엔 제 이름이 싫어 개명도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십년 넘게 ‘박성오’라는 이름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이제는 익숙하고 이런 해프닝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방송을 통해 꼭 하나 당부 드리고 싶은 건, 제발 이름만 보고 성별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박성오가 여자 이름일 수도 있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양주 | 박성오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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