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동양의 슬픈 칼잡이' 장동건, 과묵할 수밖에…

입력 2010-12-0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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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스티발’의 진정한 가치는 단도직입적인 저질스러움에 있다. 관객들이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은 변태적인 소재들이 아니라 소심하고 주류적인 결말이다. 사진 제공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 ‘페스티발’의 진정한 가치는 단도직입적인 저질스러움에 있다. 관객들이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은 변태적인 소재들이 아니라 소심하고 주류적인 결말이다. 사진 제공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이 지어내는 결과물’이라는 뜻이 담긴 이 놀라운 깨달음은 영화 관람에도 필요하다. 아무리 민망하고 괴로운 영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매우 행복한 태도로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관객들에게 적잖은 비판을 받은 두 영화를 무지하게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① 워리어스 웨이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 해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를 두고 언론 대부분이 혹평을 쏟아냈다. ‘할리우드를 향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는 애매한 평가도 있던데, ‘의미 있는’이란 수식어는 ‘의미’는 있으나 ‘돈’은 안 된다는 말을 영화계에서 아름답게 하는 방식이다(학부모들이 ‘우리 아들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한다’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장동건이 영어 대사를 구사하는 이 영화 속에서 민망할 만큼 단세포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현상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태국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미남 톱스타가 한류의 본산인 한국 영화시장에 ‘의미 있는’ 도전을 한다면? 그 배우의 이름을 가령 ‘똠양꿍’이라고 해보자. 이 똠양꿍은 자국민들로부터는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지만 불행히도 한국 관객은 그를 전혀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영화를 한국 관객에게 어필할 방법은 뭘까.

우선 똠양꿍의 출신국인 태국에 대해 한국인이 지닌 판타지를 자극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똠양꿍은 코끼리를 타고 나타날 공산이 크고, 고려시대에 우연히 태국으로부터 배를 타고 강화도에 당도한 의문의 인물이면 금상첨화다.


■ 워리어스 웨이 태국인이 한국영화 나오면? 대사 적어야 관객몰입 쉬워




그 다음은 액션. 똠양꿍은 태국의 전통무술을 구사하면서 독창적인 액션을 보여줄 터. 하지만 액션에는 논리적 감성적 근거가 필요하니, 원한이나 일편단심 같은 절실한 사연이 추가될 것이다. 여기서 똠양꿍과 키나 이미지로 볼 때 어울릴 만한 한국 여배우 하나가 파트너로 지목될 것이다. 그러나 똠양꿍과 이 여배우의 사랑 얘기는 너무 진한 수위에까지 이르면 안 된다. 보수적인 일부 한국 관객의 반감을 살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는, 액션과 러브스토리라는 상업영화의 두 축과 비교적 무관한 배경설명과 에피소드는 과감히 가지치기해 오락성이 선명한 상품을 만드는 것. 또 똠양꿍이 서투른 한국어 대사를 많이 구사할 경우 한국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할 터이므로 그는 필히 과묵한 캐릭터이거나 묵언수행을 해야만 하는 비밀스러운 사연을 가질 것이다.

자, 어떤가. 이런 논리를 장동건에게 대입하면 워리어스 웨이란 영화와 고스란히 포개어진다. 동양에서 온 ‘슬픈 피리’란 이름의 칼잡이(물론 그는 과묵하다)가 미 대륙 서부로 가 총을 든 악당들과 결투를 벌이는 것. 이 과정에서 주인공과 동병상련의 사연을 가진 미국 여성과 사랑의 감정을 싹틔우게 된다는 스토리라인이 아니 나올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 페스티발 저질스러움이 이영화 가치 판타지의 핵심은 침소봉대

이는 장동건뿐만 아니라 청룽(成龍), 리롄제(李連杰), 저우룬파(周潤發) 등 아시아의 선배 스타들이 이미 지나간 길. ‘글로벌시장 진출을 위해 로컬 상품이 국제 표준화되는 현상’이라는 비즈니스 시각으로 바라보면 한껏 흐뭇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체유심조….


② 페스티발

이 영화를 보다 말고 “저질”이라며 극장을 나가버리는 관객 몇 명을 보았다. 얼마나 숭고한 영화를 상상하며 티켓을 끊었기에 그리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단도직입적으로 저질스러운 바로 그 태도에 있다.

페스티발은 각종 ‘변태’들로 가득하다. 낮에는 한복에다 고무신 신고 고매한 척하다 밤만 되면 남자친구를 향해 징 박힌 채찍을 휘두르는 한복집 여주인, 시들해진 남자친구의 전의(?)를 다시금 북돋기 위해 여고생 제자로부터 교복을 빌려 입고 애인이 귀가하길 기다리는 영어학원 여강사, 섹스인형을 사람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어묵 파는 총각…. 이런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대놓고 양지로 드러내며 키득키득대는 뻔뻔한 태도 자체가 이 영화의 상품성인 것이다.

일부 관객은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수의 얘기인 양 늘어놓아 반감이 생긴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판타지의 핵심정신은 어차피 ‘침소봉대(針小棒大)’인 것을. 조폭 영화가 차고 넘치지만 이 사회에선 ‘민간인’의 수가 조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알고 보니 페스티발은 ‘해리 포터’나 ‘나니아 연대기’와 다를 바 없는 (성인을 위한) 판타지 영화란 사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관객이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은 변태적인 소재들이 아니다. ‘이런 변태적인 애정행각들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똑같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결국 일부일처(一夫一妻)로 귀결되는 이 영화의 소심하고 주류적이고 ‘비변태적’인 결말인 것이다. 일체유심조….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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