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이범수 “우리 영화 할리우드 뺨 후려칠 것”

입력 2012-04-03 09: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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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배우’ 이범수는 매우 진중하고 생각이 많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23년 차 배우의 관록이 묻어나면서도, 그의 표현대로 구태의연하지 않은(그는 이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신인 같은 신선함 느껴졌다.

최근 이범수는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면서 자신만이 개그 코드로 ‘역시 이범수’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런 그가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서는 엘리트 지략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2일 오전 영화권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1만7천173명(1일 기준), 누적 관객수 36만8068명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했다.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에서 이범수가 맡은 백현철이라는 캐릭터는 그동안 그가 해왔던 ‘버럭 범수’, ‘다크 범수’ 등 강한 캐릭터와는 상반되는 어쩌면 밋밋한 캐릭터.

오히려 극중 류승범이 연기한 안진오 역이 그에게 잘 어울렸을 법도 하다. 안진오는 안하무인에 과한 행동 등 버라이어티의 노홍철을 그래도 옮겨놓은 것 같다.

이에 대해 이범수 역시 “승범이가 그렇게 날뛰는데 몸이 근질근질해서 미칠 뻔 했다”고 말했다.

-의외의 캐릭터를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큰 눈을 반짝거리며) 일단 시나리오가 흥미로웠고 욕심이 났다. 현철이는 평범한 캐릭터이지만, 이런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어떻게 존재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극적인 캐릭터에 기대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속에 녹아들어 어떻게 두각을 나타내는 플레이를 할 것인가?에 대한 흥미가 배우로서의 역량을 시험하고 도전하는 계기가 됐다.”

-언론시사 후 이범수의 ‘미친 존재감’이 다시금 인정받았다는 평이 많았다.

“부모님께 기사 복사해서 가져다 줘야 겠다. 그렇게 평해 주니 감사하다. 사실 시사회 후 만족했다. 예상 관객 수는 500만?(웃음) 전국적으로 한명만 늘어난다고 해도 좋다. 우리 영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해간다고 할까봐 걱정이다. 할리우드 영화 뺨을 후려칠 정도로 재미있으니까….(웃음)”


-함께 출연한 김옥빈, 류승범 모두 개성이 강한 배우들이다. 호흡에는 문제가 없었나.

“잘 믿고 따라 와줘서 고맙다. 팀워크는 최고였다. 코믹 영화는 현장이 재미있기 때문에 느슨해 질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치열하게 의견을 내놓고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치열하게 집중한 보람이 있었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는 이범수가 심사위원을 맡았던 ‘기적의 오디션’ 준우승자 주희중이 출연했다.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나한테 배운 친구가 한 작품에 등장한 것은 여러 가지 느낌이 교차하면서 불안하더라. 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버벅 대지 않고 함께 열연을 펼쳐주었다. 누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난 후배들에게 항상 말한다. 화려한 스타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마무리가 있는 거라고….”

-어느새 23년 차 배우다. 후배 양성에 힘써볼 의향은 없나.

“재미있는 질문이다. 그걸 드러내 놓고 한다, 안 한다 보다는 언제든지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매니지먼트 사업이라는 것이 내 영역의 확장인데, 재주가 없어서 못 할 것 같다. 그냥 난 배우 체질인 것 같다. ‘기적의 오디션’ 할 때도 심사를 하는데 내가 막 무대위로 오르고 싶더라니까…. (큰 웃음)”

23년이나 된 배우에게서 새내기 배우의 열정을 보았다. 이범수는 자신의 기운을 어쩌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처럼 그렇게 에너지가 넘쳤다.

-카리스마 넘친다고 생각했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역시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것 때문일까.

“(웃음) 안 그래도 아내한테 ‘결혼하고 야성미를 잃은 거 같아. 맹수의 눈빛이 사라진 것 같다’고 우스갯소릴 한 적이 있다. 자꾸 웃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잃은 것이 아니라 촉촉한 감성이 풍부해진 것이더라. 슬픔을 끌어올리는 것이 기가 막히게 잘 되더라.”



얼마 전 딸의 돌잔치를 한 아빠 이범수는 맑게 웃는 얼굴로 행복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범수의 시작은 연극이었다. 38편의 다작을 한 그는 연출도 2번이나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느냐 물으니 “물론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하더라도 뜬금없이 말고 의미 있게 제대로 할 것”이라고 일축한다.

이범수는 ‘책임감을 갖고 장인 정신을 가진 배우’가 꿈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배우들이 많을수록 관객도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관객을 위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좋은 배우라고 말하는 이범수는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범수는 분주하게 매니저를 찾았다. 인터뷰 도중 학교 후배인 하정우, 현빈과 함께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참을 찾더니 “우리가 과거에 이랬다”며 보여준다.

사진 속 까무잡잡하고 조금은 촌스러운 20대의 세 남자가 수영팬티만 입은 채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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