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서 고운 자태를 뽐내던(?) 그도 무대에 서면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머리를 질끈 묶고 거칠고 남루한 갈색 의상을 입고 유다가 되어 ‘헤븐 온 데어 마인즈(Heaven on Their Minds)를 부르는 순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지크수’)가 낳은 올해의 ‘수퍼스타’이기도 하다. 무대에 선 그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이에 최재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좋은 작품이고 특히 음악이 좋은 것 같다. ‘겟세마네’, ‘헤븐 온 데어 마인즈’ 등 음악 자체가 신선하고 이야기 구성이 뛰어나지 않나. 그래서 어떤 배역이든 상관없었다. 남자 배우라면 누구든 도전하고픈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연기하는 ‘유다’는 성경 속에 나오는 것처럼 지저스를 은 30닢에 팔아 넘긴 인물을 넘어서 세상을 구원하려는 지저스의 미션을 완성시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저스를 사랑하면서도 그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며 격하게 분노하기도 한다. 최재림은 이 애증의 관계를 세심하게 푸는 것에 고심했다.
“연습하면서 유다가 지저스와의 관계를 깊이 유지해가면서 그를 배신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연출가인 이지나 선생님과 재미있게 고민을 했어요. 무대에 서면서는 제가 의도한대로 ‘유다’가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죠. 극중 유다는 지저스의 선택을 막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배신을 하잖아요. 지저스의 선택을 막는 것부터 배신하는 과정까지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잘못하면 극이 산으로 가니까요. 그 배신하는 계기를 잘 표현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최재림이 넘겨야 할 과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넘버다. 음표가 하늘을 찌르고 3옥타브 G코드까지 올라가는 넘버는 노래 잘 하기로 소문난 그에게도 일종의 ‘고난’의 숙제였다. 넘버에 대해 묻자 입가에 미소부터 짓는다.
“넘버가 힘든 것은 사실이라 하고 싶은 것만큼 소화는 못 해요. 제일 위험한 게 넘버를 부르며 감정에 집중하면 소리가 너무 거칠어지고 소리를 충족시키려면 감정이 그 만큼 드러나지 않아요. 소리와 감정의 부딪히는 갈등이 있는데 두 개의 교차점을 찾으려 해요. 음역대 자체가 신체적인 소모가 많아서 격양된 긴장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에요.”
유다의 대표곡인 ‘헤븐 온 데어 마인즈’와 ‘수퍼스타(Superstar)’ 중 좋아하는 곡을 고르라고 하니 단연코 “수퍼스타”라고 답한다. 그는 “’헤븐 온 데어 마인즈’는 오프닝이라 부담감이 크다.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극의 흐름이 달라진다”라고 말하며 ‘수퍼스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제 ‘수퍼스타’를 우려하셨어요. 못 출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춤이 약한 건 사실인데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거든요. 하하하. 이지나 선생님도 춤보다는 멋진 포즈 정도를 요구하셨어요. 제가 워낙 장신이라서 그래도 상관없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그냥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이제 좀 즐기기 시작했어요. ‘수퍼스타’는 관객들이랑 호흡하면서 부를 수 있으니까요.”
최재림은 한동안 무대 위에 서지 않았다. ‘어쌔신(2013)’ 이후 모든 활동을 접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학업에 열중했다. 스스로 필요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성악 전공이라 늘 노래는 신경 쓰고 있는데 연기는 그 만큼 신경을 쓰지 않더라. 주변에서 연기를 배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공부를 하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수업의 80%가 실기라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특히 ‘움직임’ 수업이 다양했어요. 그래서 몸에 대해 전보다 많이 알게 됐어요. ‘호흡과 발성’이라는 수업에서 화술도 배우고요. 동기들과 연기에 대해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니기 전후가 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준비되는 선 안에서 연기했다면 이젠 그날에 따른 상대방 연기자의 다른 반응에 저도 변화할 줄 알게 됐다는 거죠. 연기도 그렇고 마음도 상대방을 향해 열리게 된 것 같아요.”
학생에서 다시 배우로 돌아온 그는 어느 때보다 작품을 향한 애정이 들끓고 있다. 날개를 펼쳐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우스갯소리로 “이젠 집 사야 된다”라고 말한 그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활동할 각오를 다졌다.
“20대에 많은 경험을 했으니 이젠 배운 것을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 뿐 아니라 사회적인 생활도요. 이제는 많은 작품을 해야 할 때라고 느껴져요. 계속 자기 개발을 하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고 다른 기회들도 오겠죠. 열심히 하려고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