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사를 마치고 보니 이태리 여성 관객이 울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묻더군요. 실제로 저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생기냐고요. 해외 관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사실적으로 느껴졌나 봐요. 어떻게 보면 이게 우리를 바라보는 이미지일 수도 있죠.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고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겠죠.”
김기덕 감독이 신작 영화 ‘그물’을 들고 돌아왔다. 전작 ‘붉은가족’에 이어 또 다시 남북관계에 초점을 맞춘 김기덕 감독은 배우 류승범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영화 ‘그물’은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북한 어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주일간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그동안 김기덕 감독은 영화 ‘수취인불명’, ‘나쁜남자’ 등 날선 메시지로 선 굵은 작품을 만들며 ‘김기덕스럽다’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김기덕 감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또 한 번 달라졌다. 이제 그를 향한 시선은 ‘김기덕 감독이 변했다’이다.
“영화마다 설명이 필요한 영화와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빈집’이나 ‘나쁜남자’는 최소한의 대사만 있어도 되잖아요. 하지만 이번 ‘그물’ 같은 경우는 대사가 많은 편이었죠. 어떤 상황과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경우에 대사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남북관계를 모티브로 제작된 ‘그물’은 지극히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전 세계에 단 하나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실정을 고스란히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남북관계를 민감하게 느끼는 지역인 파주에서 제가 살고 있죠. 실제 영화배경도 파주인데 강 경계선 부근이 있거든요. 실제 망원렌즈로 촬영하고 그래픽을 보강해서 찍었어요. 영화라는 게 피할 수 없는 구성이 있어요. 강조를 위해 생략하고, 생략을 위해 강조하는 연출법 말이죠.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 그에 걸맞는 이데올로기로 상반된 캐릭터도 구축했죠.”
영화 제목 ‘그물’인 이러한 상황적 배경을 그대로 표현한 단어이다. 여기서 ‘그물’은 국가를,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개인을 의미한다. 그물에 갇힌 물고기를 표현하기 위해 김기덕 감독 본인의 경험 역시 한몫했다.
“이 영화의 발단 자체가 1970~80년대였어요. 그때는 임진강에도 고기잡이 배들이 있었죠. 영화처럼 분계선을 넘으면 무조건 조사를 받죠. 그 당시 ‘죽어도 가겠다’며 북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제게 큰 쇼크였어요. 뼈만 앙상하게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아무 것도 안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더라고요. 영화에서도 그런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 류승범 씨가 눈을 계속 감고 있는 모습을 주문했어요.”
영화 ‘그물’은 애초에 완성된 작품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차츰 구성하던 도중 우연히 류승범 배우를 만났고 그 이후부터 작품이 구체화됐다. 류승범은 북한 어부 ‘철우’ 역을 맡아 그 배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시나리오는 차츰차츰 썼는데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인사를 해오면서부터 작품이 시작됐어요. 머릿속에만 있던 내용들이 현상화가 되면서 작품으로 살아난 거죠. 영화를 찍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어요. 근데 편집할 때 비로소 배우 류승범을 발견했어요. 승범 씨가 고민하면서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워낙 에너치가 넘치는 배우라 촬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김기덕 감독은 류승범 배우를 너무 극찬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까지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배우들을 떠올리며 모든 게 ‘운명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만나는 모든 배우들과 작품들이 하나의 운명으로 얽혀있다고 굳게 믿었다.
“영화를 하며 만나는 배우는 다 운명이라 생각해요. 그 배우와 같이 한 배를 타고 가는 거죠. 설령 그 배우가 중간에 좀 미숙하더라도 내가 그걸 보완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 배우와 하기로 했다면 그 자체를 캐릭터로 잘 만들어야 하는 거죠. 승범 씨는 그러한 범주에서 잘해줬다고 생각해요. 모든 배우들이 다 잘했다 못했다 함부로 말하지 못하지만 배우와 함께 캐릭터를 구축하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 감독의 숙제인 셈이죠.”
특히 ‘그물’은 ‘제7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제41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초청작으로 개봉 전부터 전 세계 평단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수위 탓에 청소년 관람 불가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국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심의등급이 낮아진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접하고 남북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것을 희망했다.
“청소년 관람가를 상상도 못했어요. 청소년이 보면 유해한 부분이 약간 있긴 하지만 남북문제 만큼은 청소년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영화가 폭 넓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청소년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나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정치를 잘못했을 때 고통 받은 사람이 누군지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국가가 그물이 아니라 어머니 품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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