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프로듀서, 사진=미디어라인
아닌 게 아니라 김창환은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김건모, 신승훈을 비롯해 노이즈, 박미경, 터보, 클론, 홍경민 등을 만들어내고 전성기를 함께한 프로듀서로, 그야말로 90년대 가요계는 그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 김창환이 오랜만에 프로듀서로 나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신인이 바로 더 이스트라이트이다.
더 이스트라이트는 평균연령이 15세에 불과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연주 실력과 작사, 작곡 능력까지 갖춘, 이른바 ‘음악 영재’들로 구성된 밴드이다.
실제 부산 아시아송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인 더 이스트라이트는 탁월한 연주 실력과 흥미로운 음악성으로 많은 관계자들의 이목을 끈 바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11월 3일 정식 데뷔를 앞두고 한창 홍보에 열중하고 있는 더 이스트라이트지만, 이들의 홍보 자료에는 어디에도 ‘김창환’이라는 이름을 찾기 힘들다.
아직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의 경우, 어떻게든 영향력과 이름값을 지닌 인물과 연결고리를 찾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를 각인시키는 게 일반적인 홍보 방법이라는 걸 생각 할 때 오히려 김창환과 거리를 두는 듯한 더 이스트라이트의 홍보 전략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김창환 프로듀서의 ‘이름 감추기’는 더 이스트라이트 뿐만이 아니다. EDM에 한창 몰입해 있을 때에도 그는 ‘PICK ME’와 같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전면에는 맥시마이트와 DJ KOO만을 내세우기도 했다.
최근 동아닷컴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김창환 프로듀서는 이런 ‘이름 감추기’에 대해 “내 이름이 들어가면 새로운 걸 하기 힘들다”라고 입을 열었다.
김창환 프로듀서는 “(YG의)양현석과 (SM의)이수만, (JYP의)박진영, (FNC의)한성호도 따지고 보면 다 90년대에 활동한 제작자이다. 그런데 나는 유독 너무 90년대로 몰고 가서 새로운 걸 못하겠다”라고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있음을 알렸다.
이어 “새로운 가수를 만들 때, 내가 작품자 성격이 강해서 제작자로 잘 안 봐준다. 그래서 EDM을 하면서도 김창환이라는 말 자체를 안했다. 내가 여전히 90년대 사는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이 90년대 사는 사람처럼 대하니 아예 이름 자체를 언급 안한 거다. 이런 90년대에 고정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신인 가수나 프로젝트를 할 때는 내 이름이 거론되는 게 별로 달갑지 않다”라고 ‘90년대 대표 프로듀서’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새로운 활동을 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창환 프로듀서는 “사실 오늘 인터뷰 자체도 나에 (과거에)대한 건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제작자 김창환 포커스로 갔으면 좋겠다. 제작자 김창환이라는 말도 잘 안 쓴다. 내 이름이 들어가면 올드해 보이는 느낌이 들까봐,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느낌이 그게 꺼려지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창환 프로듀서, 사진=미디어라인
큰 이유는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더 이스트라이트에 덧씌워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김창환 프로듀서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더 이스트라이트의 능력과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이다.
더 이스트라이트가 대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아시아송페스티벌 무대에 대해 김창환 프로듀서는 “그날 공연이 실은 리허설도 못하고 올라간 무대다. 원래 큐시트가 있던 무대도 아니었다. 처음 이야기가 된 거는 본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사전 공연 식으로 올라가기로 했는데, 그날 연출의 실수로 사전 공연을 못하게 됐다. 할 수 없이 리허설도 못하고 본 공연에 올라간 거다”라며 “의도치 않게 본 공연에 올라갔는데, 그날의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무대였던 거 같다. 중학생들이지만 중학생 같지 않은 무대를 보여줬다. 그게 찬사를 많이 받았다”라고 더 이스트라이트의 무대 후 반응을 전했다.
특히 무대 후 어린나이에 큰 인기를 얻었던 미국의 형제 밴드 핸슨(Hanson)과 비교가 되거나, 목소리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초창기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에 대해 그는 “해외 누구와 비교하는 건 애들이니까 그런다. 그런 가수가 떠오르는 건 그만큼 잘해내간다는 뜻이다”라고 평가했다.
또 김창환 프로듀서는 “얘들(더 이스트라이트)은 길거리 캐스팅을 해서 상품으로 만든 친구가아니라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다. 평생 음악을 하라고 만들어준 친구들이다. 지금은 어린애들이 음악 한다고 할 수 있지만 30년 뒤에도 이 친구들은 다 (음악가로)남아있을 거 같다.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음악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기획의도 자체가 지금 나와 있는 가수와는 좀 다른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김창환 프로듀서가 말한 이 기획의도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김창환 프로듀서는 쉬운 예로 서태지의 사례를 꼽았다.
그는 “예를 들어 서태지는 아이돌 스타였는데, 음악가 출신이다. 끝까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음악가 출신이냐 스타를 꿈꾸냐는 다른 거 같다. 똑같은 아이돌 스타래도 서태지처럼 끝까지 음악을 하는 경우가 있고, 결국 방송 예능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차이다”라고 ‘음악가’를 기획하느냐 ‘스타’를 기획하느냐의 차이를 설명햇다.
이어 “지금은 모두가 아이돌인 시장에서는 실력 있는 아이들이 나와서 한국 음악시장을 살짝은 바꿔놓을 필요가 있는 거 같다. 아이돌 댄스그룹을 대부분 스타를 갈망하는 거지 훌륭한 음악가를 갈망하는 게 아니지 않나. 더 이스트라이트는 훌륭한 음악가를 갈망하는 친구들이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또 하나 궁금한 건 ‘왜 밴드일까’이다. 앞서 말했듯이 최근 김창환 프로듀서는 EDM에 몰입해 있었지만 밴드를 선택했다. 또 밴드라는 포맷은 대중음악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중 하나로,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김창환 프로듀서의 말과 대치돼 보이기도 한다.
“밴드는 예전부터 생각했다”라고 입을 연 김창환 프로듀서는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사실 새로운 게 없지 않나. 우리나라 음악 시작이 아이돌 일변으로 가버렸다. 솔로가수도 별로 없다. 아이돌이 솔로 시장도 가져가 버렸다. 대한민국 음악 시장에서는 아이돌이 곧 가수다. 그사이에서 뭔가 색다른 걸 하고 싶은 거다. 쉽게 말해 춤추고 노래하는 건 모든 회사가 할 수 있지만, 음악적으로 뭔가 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EDM공부도 그래서 한 거다. 그리고 영재 밴드도 새로운 아이템이었다. 굉장히 악기를 잘하고 음악적인 아이들을 기르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 시장에 젊음도 유지하고 내가 생각하는 음악적인 색깔도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돌이지만 음악하는 아이돌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더 이스트라이트를 결성한 이유를 밝혔다.
게다가 더 이스트라이트는 표면적으로는 밴드의 포맷을 취하고 있지만, 특정 장르에만 국한된 음악을 하는 팀이 아니다.
김창환 프로듀서는 “더 이스트라이트는 이미 EDM도 다 가르쳐놨다. 중학생인데 이정도하는 애들은 전 세계적으로 몇 없을 거다. 디제잉도 잘한다. EDM의 요소를 공부를 시켜 놨다. 나중에는 밴드가 아니라 EDM 음악을 할 수도 있다. 유명해졌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다 가르쳐 놓는 거다. 시장을 폭넓게 알아야 도전도 한다”며 “하나의 음악가 집단을 만드는 거다. 애들이 크면 멤버 개개인이 음악가가 되고 프로듀서가 될 거다. 즉, 음악하는 아이들을 만들어가는 거다”라고 단순히 나이 어린 밴드를 결성한 게 아니라고 밝혔다.
간단히 생각하면 그냥 아이돌 밴드를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김창환 프로듀서는 여기와도 선을 그었다.
김창환 프로듀서, 사진=미디어라인
김창환 프로듀서는 더 이스트 라이트를 통해 더 큰 그림을 보고 있었다.
김창환 프로듀서는 “(대표적인 아이돌 밴드인) FT아일랜드나 씨엔블루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일단 더 이스트라이트는 이들을 목표로 나온 그룹이 아니다. 밴드라고 다 똑같은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그룹이 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누군가를 목표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온 밴드가 아니다. 각자의 개성을 다 살리고 프리하게 하고 싶은 거 하게 만들어나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음악, 새로운 패러다임의 음악, 그런 게 충분히 있다. 그게 우리 장점이 될 수 있다. 독특한 걸 만든 건데, ‘그냥 밴드가 나왔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미미하지만, 방향성이 나오면 지진이 나고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획일화된 한국 음악 시장에 달콤함을 줄 수 있을 거 같다. 밴드지만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라고 더 이스트라이트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창환 프로듀서가 더 이스트라이트가 가요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과 영재들의 능력이 결합된 시너지를 보고 그는 가요계 지각변동을 예상했다.
김창환 프로듀서는 “처음 김건모 데뷔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김건모를 준비할 때 주변에서는 하지마라고 다 뜯어 말렸었다. 그런데 국민 가수가 됐지 않나. 뭔가 새로운 걸 도전하고 새로운 시장을 펼치는 친구들은 시작이 힘들다. 기존의 벽이 부딪히니까. 그런데 그게 무너질 때는 걷잡을 수 없다”며 “더 이스트라이트는 그냥 어린애들이 기타를 잘치고 드럼을 잘치고 그런 상황에 내가 이끌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게 나와 맞는 거다. 많은걸 가르쳐주고 다양성을 심어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혼자 방구석에서 기타를 치다가 영재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 뒤가 없으면 흐지부지 해지고 만다. 어려서 미적분을 풀었다고 다 아인슈타인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그런 가능성을 이끌어주고 가르쳐줄 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더 이스트라이트는 처음부터 다르다고 하는 거다. 단추를 끼고 있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김창환 프로듀서가 더 이스트라이트를 통해 그리고 있는 큰 그림, 즉 새로운 패러다임은 ‘가요시장의 다양성’이다. 그리고 김창환 프로듀서는 음악가로서 이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김창환 프로듀서는 “없어진 음악시장을 부활시키고 싶은 거다. 예전에 ‘가요톱텐’은 어른들도 봤다. 그 시절에는 태진아, 설운도, 주현미도 나오고 서태지도 나왔다. 지금은 똑같은 음악을 한 곡 듣는 느낌이다. (듣는 사람이)애들밖에 없고, 다양성이 없다. 그러니 30% 나온던 시청률이 1% 나온다. (더 이스트라이트는)다양성에 대한 패러다임이다. 더 이스트라이트가 대중적인 성공을 하고 사랑을 받으면 우리처럼 시작하려는 시장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차트에서)볼빨간 사춘기가 되게 좋다. 그런 다양성이 필요하다. 팬덤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올라올 수 있는 그런 시장을 시작하기 위해 도전을 하는 거 같다. 이런 친구도, 저런 친구도 있어야 음악적으로도 다양해지고 더 시장이 커질 거다”라고 말해 더 이스트라이트가 더 넓고, 더 다채로운 음악시장의 형성을 위한 포석임을 알렸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