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터뷰 기사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인랑’으로 김지운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30일) ‘인랑’은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SF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 또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인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인랑’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이 분명했다. 몇 가지 설정들에 대해 관객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김지운 감독이 큰 그림을 그리고 설정한 것들이었다.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인랑’은 어떤 영화일까.
● ‘인랑’의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직접 영화를 봤다.
“내 입장에서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반응이 대중들 반응 다음으로 궁금한 부분이었다. 극찬을 들은 것 같다. 수고했다는 격려의 의미도 있었겠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의 최대치가 나온 것 같다고 하셨다. 또 일본에서는 절대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하시더라. 한국이니까 가능한 것 같다고 하셨다.”
● ‘인랑’의 오프닝이 인상 깊더라. 오프닝을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었나?
“‘인랑’ 원작을 가지고 한국 영화로 실사화하면서 오마주 측면에서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인랑’을 만들면서 시점이 중요했다. 6월 항쟁과 같은 느낌으로 설정하면 영화적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랬을 때 좀 더 현실감 있는, 한국적인 소재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또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이슈가 필요할까 싶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위기의식들,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지표들 중 통일이 있었다”
“그 설정이 한국적인 서사를 만들 때 딱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원작의 프롤로그 형식을 가지고 와서 그걸 3분30초의 길이로 만들었다. 내레이션이 끝나는 무렵에 큰 보름달을 배경으로 ‘인랑’의 실루엣으로 시작하는 게 중요한 오프닝이었다. 원작의 대표적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 공교롭게 ‘인랑’ 개봉 전 남북의 관계가 급속도로 변화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설정하면서 아이러니 했다. 현실이 SF영화라고(웃음). 생각보다 더 빨리 변하고 엄청난 강도로 변했다. 이걸 기획하고 쓸 때만 해도 통일은 SF라고 생각했다. 근데 편집을 하다 보니 남과 북 두 정상이 산책을 하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더라. 현실을 못 따라가는구나 싶었다. 픽션의 절박함이 현실의 절박함보다 더 치열하고 숨 막힌다고 느꼈다. 앞으로는 SF를 하지 말고 현실을 다뤄야 그게 SF라는 생각이 들더라.”
● ‘인랑’이 로맨스 영화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도화된 훈련을 받은 인간 병기가 공수부대들, 민간인을 학살했을 때 제정신이었을까 싶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루머로 약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돌 정도였다. 처음에는 야만의 시대, 혼란기에 대한 세계관을 만들고 사랑에 대한 질문을 전딜 수 있을까 하다가 질문이 바뀌었다. 군인은 명령을 부당하게 생각했을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집단을 만들고 인물을 설정하다보니, 한 사람은 공안부를 상징했고 이윤희는 또 하나의 집단이었다.”
“친구, 여자, 스승을 거치면서 자각하는 과정이 주제가 됐다. 그러면서 집단의 생각에서 개인의 생각, 집단의 말에서 개인의 말을 하는 자각과정을 이야기하는 걸 이 세계관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많은 분들이 로맨스 영화로 보시는 것 같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중 강동원과 한효주의 모습이 로맨스에 치중되지 않았냐는 의견이 많았는데.
“표면적 대사로 무언가를 부정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차려놨는데, ‘왜 이것만 파고 이것들은 안 즐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니까. 물론 나의 잘못일 수도 있고, 보는 사람들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작이 모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인물들도 초연해있는 인물들이다. 그걸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작 팬들 사이에서 제일 논란이 많은 것들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인물에 비해 너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한다. 톤 조절이 쉽지 않았다.”
● ‘인랑’을 비주얼 영화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번 배우진의 캐스팅이 화려했다. 이 배우들의 캐스팅 이유는 무엇이었나?
“만화영화를 실사로 옮겼을 때 가장 이질감이 덜 드는 배우가 강동원이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오프닝의 이미지, 달을 배경으로 총을 들고 서있는 특기대의 실루엣을 누가 할 수 있나 생각했다.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유리막에 둘러싸인 느낌이 들었다. 감정적인 소통 접근이 어려운 인물이 누구일까, 비밀에 싸여있고 현실적인 접근이 어려운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게 강동원이었다.”
“강동원과 정우성 모두 액션이 뛰어난 배우들이다. 둘은 너무 다르다. 한 명은 불같고 한 명은 서늘하다. 그러면서 정조가 느껴진다.”
“한효주도 독특한 마스트를 가지고 있다. 엘레강스 하다고 해야 하나. 씩씩한 느낌도 든다. 안정감 있는 연기와 디테일한 연기가 있다. 안정감 있는 배우를 장르 영화로 가져왔을 때 ‘재밌게 연기를 하네?’라는 느낌이 얘기돼질 수 있는 배우를 기용하고 싶었다. ‘밀정’의 한지민도 그랬다.”
● ‘인랑’이 넷플릭스에서 해외 배급권을 사갔다. 그렇게 되면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생기기 마련인데.
“현실적으로는 한 시름 놓은 부분도 있다. 근데 영화감독 입장에서는 아쉬운 것도 있다. 각 나라에 세일하면서 이것이 큰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일까 싶더라. 압도감을 느낄까 하는 게 없어진 거다. 해외 배급권을 주면서 조건은 영화제에서 오픈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 느낌은 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워너에서 ‘마녀’로 한국형 히어로 영화를 제작했다. ‘인랑’도 비슷한 분류.
“마블, 프랜차이즈 외화가 이렇게 강세일지 몰랐다. 세계 영화가 아트 영화, 상업 영화가 아니라 마블과 프랜차이즈 영화와 다른 영화의 (대결) 구조가 된 것 같다. 마블의 유니버스로 들어가야 하나 생각이 든다(웃음).”
● 결말은 원작과 달랐다. 이유가 있나?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었다. 힘들게 왔는데, 이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어두운데 회색빛으로 끝내야하나, 해피엔딩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원작과 같은 엔딩을 찍긴 했다.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결론이 들어왔을 때 폭발력을 가지는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