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입장 나올 수록 논란 커진다
해명하고 설득할수록 더 시끄러워진다. 입장이 나올 때마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JTBC 드라마 ‘설강화’(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연일 쏟아진다.최근 방송가에는 ‘중국색’과 사실(역사·인물 등) 왜곡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질 않는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개연성을 무시한 PPL(Product Placement. 일명 간접광고)부터 왜곡된 내용을 사실처럼 다루는 제작 행태 때문이다. 그중에도 ‘대놓고 역사 왜곡’을 자행한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연출 신경수, 극본 박계옥, 제작 스튜디오플렉스·크레이브웍스·롯데컬처웍스)는 철퇴를 맞았다. 방송 2회 만에 폐지(편성·제작 취소)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것.
그리고 이번에는 ‘설강화’가 구설에 올랐다. 민주화 운동 폄훼 등 작품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 사실 왜곡에 가깝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편성 일자도 확정되기 전에 벌써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온라인상에 쏟아진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상태다. 참여 동의 인원만 벌써 15만 명(31일 오후 1시 16분 기준 14만 8655명)을 눈앞에 둔 상황.
이에 JTBC는 지난 26일 처음으로 입장문을 내놨다. JTBC는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다. ‘설강화’는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그 회오리 속에 희생되는 청춘 남녀들의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다.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 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 특히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 등은 ‘설강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다를뿐더러 제작 의도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어지고 있는 논란이 ‘설강화’의 내용 및 제작 의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해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입장문은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블랙코미디’라는 단어가 ‘민주화 운동’이라는 숭고한 단어와 결을 같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쏟아진 것. 작품 장르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작품 장르 자체가 시대적 배경과 소재, 인물 캐릭터에 파생되는 일련의 문제와 결을 같이 하자 문제로 지적된다. 사태를 수습하고 분위기 전환을 꿰하려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일이 커진 셈이다.
결국 JTBC는 또다시 2차 입장문을 내놨다. 30일 불타오른 ‘보이콧’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을 반박하는 형식의 입장을 밝혔다.
JTBC는 “드라마 ‘설강화’ 논란에 거듭 입장을 밝힌다. 본 방송사는 ‘설강화’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재차 입장을 전한다”며 “현재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다.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 물론, 이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제작진 책임이다. 이에 본 방송사는 ‘설강화’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JTBC는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 말한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 ‘설강화’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이다.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설명했다.
JTBC는 “이런 배경하에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하는 캐릭터들이다. 그러므로 간첩 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 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 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 요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인물은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고 이야기했다.
JTBC는 “극 중 캐릭터의 이름 설정은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하다. 하지만 선생님을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관련 여주인공 이름은 수정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 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수많은 창작자를 위축하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한다. 본 방송사는 완성된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언뜻 JTBC 입장은 언뜻 설득력을 지닌 듯하다. 딱 언뜻. 실상은 오히려 문제 제기를 허위사실로 규정하고 지적하는 행위조차 못하게 막는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시청자 고유 권한이다. 방송 강행 의지가 있다면 그냥 제작해 방영하면 된다. 그런데도 문제 제기조차 불편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내놨다. 여기서 밀리면 ‘조선구마사’처럼 ‘제작 중단’, ‘편성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로 몰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분명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다. 다르게 입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 JTBC가 말한 것처럼 온라인상에 떠도는 파편된 내용이 ‘미완성 시놉시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논란과 구설을 수습하는 대처 방식과 자세다. 민주화 운동 폄훼 지적에는 차라리 민주화 운동 단체 등을 찾아 작품을 설명하고 오해를 먼저 푸는 게 합리적이다. 천영초 선생 관련해서도 그렇다. 천영초 선생과 관련된 곳을 찾아 실존 인물과 무관함을 설명하고 이를 명확하게 하면 된다. 이런 절차를 보여주지도, 입장문에 담지도 않고 대중과 시청자에게 문제 제기를 멈추라니.
애초 설득 방식이 잘못됐다. 설득 방법을 모르니 논란은 커질 수밖에. 민주화 운동 관련 단체에서 인정한 작품인데 누가 이걸 폄훼라 하겠나. 실존 인물과 관련된 곳에서 무관하다는데 누가 연관 짓겠나. ‘설강화’ 논란은 작품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 상황은 두 번의 입장문에서 논란 크기를 더욱 키웠다. 작품을 내용을 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건 분명 문제지만, 보이콧을 외친 이들이 작품을 볼까도 싶다. 이미 문제는 커졌고 모든 판단은 방송사와 제작진 몫이다. 어떤 평가가 뒤따를지는 작품이 나와봐야 알 수 있다. 다만, 현재 분위기는 ‘설강화’에 좋지 않다. 그게 현실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방송사와 제작진 숙제다.
● 다음은 JTBC 2차 공식입장 전문 (30일 자료 배포)
JTBC가 드라마 ‘설강화’ 논란에 거듭 입장을 밝힙니다.
JTBC는 ‘설강화’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재차 입장을 전합니다.
현재의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습니다.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입니다.
이에 JTBC는 ‘설강화’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1.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2. ‘설강화’의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입니다.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3. 이런 배경 하에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시키는 캐릭터들입니다. 그러므로, 간첩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합니다.
4.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요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인물은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됩니다.
5. 극중 캐릭터의 이름 설정은 천영초 선생님과 무관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관련 여주인공 이름은 수정하겠습니다.
위 내용들을 토대로, 이 시간 이후부터는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수많은 창작자들을 위축시키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합니다.
JTBC는 완성된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다음은 JTBC 1차 공식입장 전문 (26일 자료 배포)
JTBC가 드라마 ‘설강화’와 관련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힙니다.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닙니다.
‘설강화’는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입니다. 그 회오리 속에 희생되는 청춘 남녀들의 멜로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합니다.
특히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 등은 ‘설강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다를뿐더러 제작의도와도 전혀 무관합니다.
JTBC는 현재 이어지고 있는 논란이 ‘설강화’의 내용 및 제작의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힙니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