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김희정의 영화 ‘라방’ 관련 인터뷰. ‘라방’은 디지털 성범죄 등 사회적 문제를 담은 영화지만 이날 인터뷰 분위기는 밝고 유쾌했다. “어제도 땡볕에 2시간 축구하고 왔다”는 김희정은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솔직한 입담을 뽐냈다.
‘라방’은 프리랜서 PD 동주가 우연히 받은 링크에서 여자친구의 모습이 생중계 되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방송 속 정체불명의 ‘젠틀맨’과 필사적인 대결을 펼치는 실시간 라이브 추격극이다. 28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놉시스를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내용이 한 번에 후루룩 읽혔어요. 그래도 제가 연기할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고민할 것들이 많았고 걱정되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한 장면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궁금했어요.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걱정한 부분이 사라지더라고요. 너무 선하고 멋진 분이라 ‘이분이라면 믿고 촬영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나올지도 잘 설명해주셨는데 그대로 잘 나온 것 같아요.”
김희정은 ‘라방’에서 자신도 모르게 ‘젠틀맨’의 몰카 라이브 방송의 희생양이 되는 ‘수진’을 연기했다. 노출이나 이미지 소비 없이 그려졌고 캐릭터의 전환점도 분명히 있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는 설정. 김희정이 걱정한 이유도 그 지점에 맞닿아 있었다.
“영화에서 필요한 소재기 때문에 언급은 해야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보여지는 부분이 어떻게든 너무 자극적인 느낌으로 다가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죠. 그림자로 연출된 장면도 감독님이 사전에 생각하셨고, 수진의 이마에 ‘END’라고 쓰인 설정도 유명한 퍼포먼스에서 가져왔다고 하셨어요. 예술적인 고민을 한 게 느껴졌죠. 보여지는 것보다 오히려 댓글로 그려진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전환점 전까지는 주로 누워있는 신이다. 말 그대로 ‘수면 연기’. ‘젠틀맨’ 박성웅이 건넨 음료를 마신 후 잠드는 설정이었기에 라이브 방송하는 박성웅의 배경으로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김희정은 “진짜 잠들진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대사가 너무 궁금해서 잘 듣고 있었어요. 뭐하고 계신지 궁금했는데 오히려 못 보니까 괴롭더라고요. 하하. 선배가 잘 리드해주시고 배려해주셔서 사실 별로 힘든 건 없었어요. 그림자 촬영 때도 오히려 더 꽁꽁 싸매주셨어요. 많이 배려해주셔서 정말 편하게 촬영했어요.”
‘라방’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김희정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느낌”이라며 “생각해보면 주변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지 않나. 어디까지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 같다.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
김희정은 수진을 향한 저질스러운 채팅창처럼 익명성 뒤에 숨은 채 쏟아내는 악플에 대한 확고한 생각도 밝혔다.
“댓글을 잘 안 봐요. 나쁜 댓글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간혹 가다 있어요. 그래도 상처받는 타입은 아니에요. 나와 가까운 사람이 욕하는 거면 너무 상처받는데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의 한 부분만 보고 나쁜 말을 다는 건 상관없어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어요.”
외유내강 김희정은 좋아하는 것을 그때그때 찾아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그는 “역할을 맡는 것도 여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 느껴보지 못한 것을 해보는 공통점이 있다”며 취미로 여행과 운동을 즐긴다고 밝혔다.
김희정이 요즘 푹 빠진 운동은 축구와 테니스다. 특히 축구는 2년 전부터 SBS 여성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원더우먼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태닝이 됐다는 김희정은 전날에는 축구했고, 다음날에는 테니스 대회가 예정돼 있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축구는 스스로와의 싸움, 팀원들에 대한 믿음인 것 같아요. 혼자 하는 운동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다같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연습하거든요. 이렇게 시간을 쓰는데 우리가 지는 건 안 되잖아요. 하하. 진심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2년 동안 저만 단 한 번도 부상도, 교체도 없었어요. 다쳐서 중간에 쉰 분들도 많거든요. 저는 다른 운동도 같이 하다 보니 (몸이) 잘 버텨주고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죠. 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내 다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이겨내면서 내면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축구는 여러모로 저에게 도움이 되는 스포츠예요.”
배우로서 축구만큼 이색적인 이력이 또 있다. 김희정은 과거 댄서 허니제이가 수장으로 있던 댄스 크루 퍼플로우 소속으로 2017년까지 댄서 생활도 병행했다.
“힙합 음악과 스타일, 춤을 많이 좋아했어요. 허니제이 언니와 같은 크루에 있었고 함께 대회도 나갔죠. 열심히 해보긴 하지만 진득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안 나간 것 보면요. 하하. 크루 활동을 계속했다면 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춤을 안 춘 지 꽤 됐기 때문에 응원하는 입장으로 봤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스우파’가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는데 허니제이 언니가 정말 잘 되어서 너무 좋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은, 꿈 많은 김희정. 그는 “배우는 뭔가 배우다 보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기더라.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으면 열심히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발 감각이 살아 있으니까~ 액션도 해보고 싶어요. 몸 사리지 않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스러운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배우는 항상 기다리는 입장이니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