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예아라 예소리
한국 대중음악사에 강렬한 존재감을 새기며 ‘가황’(노래의 황제)이란 수식어를 유일하게 품에 안은 가수 나훈아(78)가 마침내 무대를 떠났다.
그는 지난해 2월 은퇴를 선언하며 준비한 ‘2024 나훈아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전국투어를 12일 마무리 짓고 58년 만에 스스로 역사의 뒤안길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나훈아는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KSPO)돔에서 5회 공연을 열고 마지막으로 7만여 팬들과 만났다.

사진제공|예아라 예소리
‘나훈아 콘서트’만의 트레이드마크는 마지막 공연에서도 그 빛을 발했다. 무대 위에서 가림막에 의지한 채 의상을 갈아입는 ‘환복쇼’, “우리 말 놓는 기라, 알았쟤?”하며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입담, 레이저와 거대 장막 등을 활용한 세련된 무대효과 등이 대표적이다.
평소 무대 위에서 사회를 향해 쓴 소리를 날렸던 나훈아는 가는 길까지 정치권을 향한 일침을 멈추지 않았다.

나훈아 ‘라스트 콘서트’ 포스터. 사진제공|예아라 예소리
이날 그가 “내 인생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은 무대들 또한 가수로서 나훈아의 정체성을 되짚는 계기가 됐다. 1996년 일본 오사카성홀 공연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외쳤던 무대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한 열정이,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껴안고 공연한 1997년 SBS ‘나훈아 그리고 소록도의 봄’은 음악으로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다는 그의 소신이 드러났다.
2시간 30여 분을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꽉 채운 나훈아는 아쉬워하는 관객들에게 “서운하나? 그래서 가는 거다”며 은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5~6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했다며 “가도 된다고 하면 돌아서는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겠나. (은퇴 결심은)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예아라 예소리
마지막 순간 공연장에 울려 퍼진 노래는 ‘사내’였다. “끝까지 울지 않겠다”던 그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마이크를 드론에 묶어 관객석에 넘긴 후 큰절을 하면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58년 가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돌아선 그의 뒷모습은 공연의 마지막 노래인 ‘사내’의 “미련 같은 건 없다, 후회도 없다”는 가사처럼 당당하면서도 후회 한 점 없이 후련해보였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