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식 성장의 표본, 밴드 루시가 인지도를 자평했다.

루시(신예찬, 조원상, 최상엽, 신광일)는 미니 6집 [와장창] 발매 기념 매체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유명한 밴드’, 우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표현이다”라고 자신들을 둘러싼 평가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조원상은 “‘내 친구가 아는데~’라면서 정작 본인은 우리를 모른다. 사실 우리가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지 체감을 잘 못하겠다. 페스티벌 무대에 서면, 적어도 (노래) 한 곡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밴드가 된 것 같긴 하다. 앞으로는 대놓고 유명한 밴드가 되고 싶다”라며 “인기 체감은 아직 못하지만 우리끼리는 알차게 잘 모였단 말을 하긴 한다”라고 지난 5년간 성장에 자부심을 나타냈다.

“루시가 자랑스럽다. 내가 속한 밴드 멤버가 신예찬, 최상엽, 신광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부러움을 유발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이어 최상엽은 “매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데 지난 5년 동안 후회한 적이 없었다. 매년 열심히 살았고 만족한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이렇게 할 것 같다”라고, 신예찬 역시 “많은 걸 바라지 않고 루시를 시작했었다. 단지 음악이 재미있었을 뿐인데, 점점 많은 분이 우리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책임감, 의무감이 생겼다”라고 밴드에 애정을 표현했다.
루시의 프로듀서인 멤버 조원상에 따르면, 미니 6집 [와장창]은 대중성을 향한 도전이다. 조원상과 최상엽은 “이전의 루시를 ‘와장창’ 깨부수겠다는 건 아니지만 큰 변화를 시도해 봤다”, “이전 앨범과 차별화를 두고 싶었다. 틀을 깨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미의 ‘와장창’이다”라고 신보명의 의미를 소개했다.

“데뷔 5주년을 기점으로 ‘와장창’ 변화를 주려는 건 아니었지만 영향이 없진 않았다. 6년 차가 되니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심이었다. 여유가 생겨 바라볼 수 있었던 지점이 ‘대중성’이었고, 특색있는 장르 사이에서 고민하게 됐다. 틀을 깨려고 했으나 많은 분이 ‘루시스럽다’라고 해주면 좋겠다.” (조원상)

“틀을 깨는 ‘와장창’처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지만, 팬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가진 앨범이다. 우리를 몰랐던 분들에게는 신선함을, 우리를 알고 있었던 리스너들에겐 루시다운 신곡일 것이다.” (최상엽)

메인 보컬이자 드럼 연주자인 신광일이 군복무로 이번 앨범에 불참, 멤버들은 신광일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 조원상은 “보컬 비중을 메인인 최상엽에게 더 맞췄다. 하지만 곡의 다양성과 특색 면에서 신광일의 공백을 채워야 했다”라며 “라이브 공연을 할 때도 최상엽 혼자 다 부르면 무리가 가기도 하고. 그래서 최근 신예찬과 함께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라고 해 3인이 꾸릴 [와장창]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했다.

새 앨범에는 더블 타이틀곡 ‘잠깨’와 ‘하마’를 포함해 ‘내가 더’, ‘뚝딱’, ‘미워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이유’, ‘bleu’ 등 총 6곡이 수록됐다. 멤버 조원상이 지금까지 발매된 루시의 모든 앨범에 이어 [와장창] 프로듀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bleu’는 최상엽이 단독 작사, 작곡, 편곡한 곡으로 한층 성장한 음악적 역량을 보여준다.

타이틀 곡이 2개인 이유도 대중성 때문이라고. 선공개된 이지리스닝계의 ‘잠깨’와 고막을 자극하는 대중적인 사운드인 ‘하마’.

그 중 ‘하마’는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지만 부끄러워 뛰쳐나오고만 화자가 이후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기는커녕 가게에 걸려있던 ‘하마’ 그림만 자꾸 떠올리는 상황을 이야기한 곡이다.

조원상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다. 나의 곡 대부분은 소설인데, ‘하마’도 마찬가지다. 아무 말이나 멜로디를 녹음해 놓고 나중에 가사를 입히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히포~’라는 가사가 먼저 나왔고 이 부분을 꼭 넣고 싶어서 제목을 ‘하마’라고 정했다”라고 비화를 공유했다.

‘잠깨’ ‘하마’처럼, 루시는 자극적이지 않은 무해한 가사로 한 편의 ‘어론 동화’를 읽는 듯한 음악을 하고 있다. 이에 조원상은 “멤버들 성향이 나쁜 생각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 ‘하마’는 사랑 이야기니까 자극적 아닌가. 내가 쓸 수 있는 (자극적인 이야기의) 최대치다”라고 답해 웃음을 선사했다.

이어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 노래는 치트키”라며 “나는 오히려 마음이 힘들 때 착한 마음의 필요성을 느끼고, ‘내가 이런 마음을 가졌더라면..’이라는 후회에서 비롯해 가사를 쓴다. 착하다기보단 지질한 쪽에 가까운 가사라고 생각한다. 나의 힘듦과 나의 바람에서 나온, 나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들이다”라고 덧붙였다.

‘하마’에도 루시의 시그니처인 바이올린 연주가 들어갔다. 재지한 피아노와 화려한 바이올린의 조화로 화자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연주자인 신예찬은 “밴드 구성에 바이올린 들어가면 가장 어려운 점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라며 “소리의 경우 우리가 어떻게든 합을 맞추면서 해나가고 있다. 퍼포먼스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바이올린 활용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지금까지의 루시 음악은 좋은 멜로디, 좋은 사운드가 서로 묻어서 다소 부담스러운 사운드를 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담백하게 갔다. 들릴 건 들릴 수 있게 절제하며 소리를 구성했다.” (조원상)

그러면서 다시 대중성에 대해, 조원상은 “직관적으로는 바이올린을 켜는 밴드, 그 자체가 우리 팀의 강점이다. 대중성이라고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기억에 남는 두 개의 특색있는 음색과 바이올린이라는 기억에 남는 소리를 갖고 있지 않나”라며 “끝까지 가봐야 중간을 알게 되듯, ‘잠깨’로 대중적인 트랙을 만들었고 ‘하마’로는 우리 색깔을 버무렸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신예찬은 “바이올린, 음색도 강점이지만 조원상이 쓰는 노래가 9할이라고 본다. 노래가 좋지 않으면 우리를 오래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신뢰를 표했다.

그러나 조원상은 군 입대를 앞둔 멤버로, 루시는 일정 기간 팀 내 프로듀서 없이 음악 활동을 해야 한다. 조원상은 “고민이 많았지만 멤버들의 자작 능력도 출중하다. 내가 없는 루시가 어떤 음악을 만들지 기대 중이다. 지금까지 나를 믿고 함께 해줬기 때문에, 멤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다”라며 “써 놓은 곡은 많다. 내 하드를 멤버들에게 주면 된다”라고 입대로 인한 공백기를 언급했다.
이렇게 루시는 지난 5년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이 펼칠 음악 세계에 자신이 있었다.

“데뷔 타이틀곡이 ‘개화’였다. 지난 5년간 루시는 정말 많이 폈다. 다음 주 공연도 매진이 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는 듯하다.” (신예찬)

“밴드 음악은 수명이 길다. 또 그 안에 다양한 장르가 있다. 요즘 밴드 음악에 관해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가 덕을 크게 봤다. 루시는 최전방에서, 밴드에 입문하는 분들에게 발판-교두보 역할을 하는 듯하다.” (최상엽)

“가깝고 친근한 키워드 원한다. 옆집에 사는 편안한 형인데 베테랑인.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준우승했던 JTBC ‘슈퍼밴드’(2019) 때와 다를 바 없다. 당시 1~2주동안 예닐곱 곡을 만들어야 했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 자신을, 멤버들을, 회사를, 기다리는 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현재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높이 올라가고 싶다. 남녀노소, 국가를 따지지 않고 음악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 (조원상)

루시의 미니 6집 [와장창]은 23일 오후 6시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발매되며, 루시는 5월 2일~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일곱 번째 단독 콘서트 ‘와장창’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효진 동아닷컴 기자 j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