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수상한 그녀’ 이후 슬럼프…‘연기 천재’ 아니면 낙오자 같았죠”[인터뷰]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심은경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쌓아온 깊은 연기를 스크린 위에 찬란히 풀어냈다. 배우로서 고민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투영된 캐릭터를 연기한 영화 ‘여행과 나날’을 통해서다.

슬럼프에 빠져 설국의 외딴 여관으로 여행을 떠나는 각본가 ‘이’ 역을 맡은 심은경은 이번 작품과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함 대신 섬세하고 지적인 연기로 내면의 떨림을 포착한 그는 “이번 영화는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고 했다.

O“어린 나이에 성공, 오히려 슬럼프 됐다”

심은경은 모국인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각본 활동을 하다가 창작의 한계에 부딪힌 각본가 ‘이’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말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이’의 대사는 일본어로 연기할 때 자신이 느꼈던 어려움을 대변하는 말 같았다고 했다.

“‘이’가 대학 강단에서 학생의 질문을 받고 ‘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고백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저 또한 스스로 재능이 없는 게 아닌가 늘 고민하거든요. 그런데 ‘이’는 저와 달리 자신의 부족함을 말로 고백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는 자신의 슬럼프를 돌이키기도 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던 그는 오히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수상한 그녀’를 기점으로 긴 슬럼프를 맞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상을 받으니 오히려 무너졌어요. 내 연기에 문제가 있는 걸 느끼는데도 그 문제가 뭔지 진단이 안됐어요. 감사하게도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한 후 제게 ‘연기 천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동시에 ‘내가 천재가 아니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시달렸어요. 연기 천재가 아니라면 낙오자가 되는 것만 같았죠. 하지만 이젠 천재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걸 알아요.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였어요.”

영화 ‘여행과 나날’ 스틸, 사진제공｜엣나인필름

O“소중한 ‘써니’ 멤버들”

심은경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원동력을 얻는 극 중 ‘이’를 통해 “일상이 아닌 비일상에서 기쁨을 찾는 법”을 배웠다고도 했다. 예능에서 좀처럼 얼굴보기 힘들었던 그가 올해 ‘유 퀴즈 온 더 블록’, ‘놀면 뭐하니?’ 등 예능에 도전했던 것도 그가 찾은 ‘비일상적 원동력’이었다.

“예전엔 예능 섭외가 와도 ‘난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니까’라는 이유로 바로 거절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기뻤죠.”

영화 ‘써니’의 주역들이 뭉쳐 화제를 모았던 MBC 예능 ‘아임 써니 땡큐’에서는 강소라, 김보미, 김민영 등과 오랜만에 재회했다. 과거 출연했던 영화가 아직 자신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 건 “정말 영화 같은 일”이라며 웃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써니’ 언니들은 여전히 소녀 같아요. 촬영 일정으로 (박)진주 언니 결혼식에 못 가서 너무 미안했어요.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너무 미안하고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