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배우 아이비가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브로드웨이 진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뮤지컬 ‘시카고’ 배우 아이비가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브로드웨이 진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사람 눈은 다 그게 그거다.

2014년 9월, 뮤지컬 ‘시카고’를 본 뒤 “역대 최고의 록시하트를 발견했다”라고 썼다. 그 후로 12년. 그 배우는 이제 ‘시카고’의 본고장 미국 브로드웨이로 날아간다. 주인공은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 아이비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배우가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대사건이다. 아이비는 뉴욕 앰버서더 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시카고’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 록시 하트 역으로 캐스팅돼 8월 17일부터 9월 6일까지 3주 동안 현지 무대에 오른다.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아이비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12년 전 본 그의 ‘록시 하트’는 예사롭지 않았다. 섹시함과 백치미에 코믹 코드까지 장착한 여배우는 흔치 않은데, 아이비는 성녀의 순수함과 팜파탈의 냉혹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연기와 음색으로 관객을 홀렸다. 브로드웨이 안무의 전설 밥 포시의 은근하고 섹시한 안무를 극한의 수준으로 소화해 내던 그 실력이 결국 뉴욕 창작진의 눈에까지 닿은 것이다.

2012년 한국 프로덕션의 록시 하트로 처음 무대에 오른 이후 2024년까지 총 6시즌 동안 592회나 무대를 지켰다. 아이비가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러브콜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5년 전에도 오디션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영어로 자기소개밖에 못 하는 수준이라 한 귀로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며 준비를 하던 중 2년 전 다시 기회가 찾아왔고, ‘시카고’의 한국 라이선스 제작사 신시컴퍼니 박명성 프로듀서의 격려에 힘입어 도전의 돛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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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합격까지의 과정은 매서웠다.
1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영상 오디션을 치렀다. 록시의 솔로곡 2곡과 뮤지컬 역사상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1막의 독백을 완벽히 영어로 외워야 했다. 1차에서는 발음 지적을 받았고, 2차에서는 악센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미국 여행 중에 갑자기 연락을 받은 3차 오디션은 반주자를 구하지 못해 친구가 다니는 교회 성가대 반주자의 집 거실에서 혼자 영상을 찍어 보내야 했다.

한국 배우의 주연급 해외 진출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대사보다는 노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성스루 작품이었다. 반면 ‘시카고’는 미국적인 풍자와 은어, 능청스러운 영어 연기가 필수적이라 진입 장벽이 높다.

왼쪽부터 아이비와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뉴시스

왼쪽부터 아이비와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뉴시스

박명성 프로듀서는 “우리 주연급 배우들은 세계적 기량을 갖췄다고 생각해 왔다. 아이비의 진출 자체가 한국 뮤지컬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힘을 실었다.

아이비는 요즘 9명의 원어민 선생으로부터 비즈니스 영어와 보이스 액팅을 배우며 학생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국 대본을 보며 한국 대본에서 생략됐던 성적인 은유와 비틀어놓은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그는 다음 주 뉴욕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아이비는 “생각만 해도 어깨가 무겁고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저처럼 영어 못해도 나이가 많아도 스타가 아니어도 이런 기회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며 “많은 분에게 꿈과 용기를 드리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뉴욕 무대를 마치고 돌아올 아이비는 12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하는 한국 ‘시카고’ 무대를 통해 록시 하트로 컴백할 예정이다. 뮤지컬의 본고장 관객들이 그를 보고 “Excellent!”, “Awesome!”, “Fantastic!”을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울 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