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승현. 스포츠동아 DB
그러나 팀이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선발투수는 다르다. 긴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선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다양한 구종을 던지며 상대 타자의 노림수도 빼앗아야 한다. 이승현은 시속 150㎞ 안팎의 빠른 공을 지녔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종이 슬라이더와 커브였는데, 커브의 구사율이 11.9%로 높지 않았다. 사실상 직구(59.7%)와 슬라이더(28.1%)의 투 피치 패턴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선발 경험이 전무했던 이승현의 보직 변경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에 그는 주어진 상황에 맞춰 비시즌을 보냈다. 삼성도 이승현이 실전감각을 유지하며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호주야구리그(ABL) 애들레이드 자이언츠로 파견했다. 이 기간 선발투수로 변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답을 찾았다. 기존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구종을 개발했다.
비시즌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이승현은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구종 개발에 몰두해 커터와 체인지업을 장착했다. 이제는 직구, 슬라이더, 커브에 체인지업, 커터 등 5개 구종을 던지는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올 시즌 9경기에 선발등판해 4승3패, ERA 3.66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노력의 결실을 맺고 있다. 구원에서 선발로 보직을 바꾸는 투수들에게 모범사례가 될 만하다.
이승현은 “호주에서 커터를 연습했고, 사실 체인지업보다 투심패스트볼을 던지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며 “스프링캠프 기간 정민태 투수코치님께서 ‘체인지업을 연습해보자’고 제안하셨고,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감이 잡히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팔을 조금 내리면서 편하게 던질 수 있게 됐는데, 그 때부터 감을 잡은 것 같다. 일본(오키나와) 캠프 때 커터의 로케이션을 가다듬고, 체인지업을 많이 던졌다. 실전에서 던지면 던질수록 더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체인지업 구사에 능한 선배 원태인(24)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원태인은 올 시즌 13경기에서 6승3패, ERA 3.04를 기록 중인 팀의 에이스다. 이승현은 “체인지업은 지난 시즌 한두 개 정도만 던졌다. 거의 안 던진 것”이라며 “예전에 (원)태인이 형에게 체인지업을 던질 때의 팔스윙 등을 배운 적이 있다. 올해는 한결 편안하게 던지다 보니, 태인이 형에게 배웠던 체인지업이 잘 통하는 느낌”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이승현이 선발로 잘 적응하고 있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