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바둑판 소송에 휘말린 프로기사 윤기현(66·사진) 9단이 14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의 심경을 밝혔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6월 부산시 바둑협회 본부장을 지낸 고 김영성(전 삼원섬유대표·2004년 작고)씨의 유족들이 윤씨를 상대로 고인이 생전 윤씨에게 맡겼다는 바둑판과 바둑알 두 세트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며 부산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부터.
유족들은 “고인이 사망 직전 ‘살아있는 기성’으로 불리는 우칭위엔 9단이 친필 서명한 ‘우칭위엔반 세트’와 조훈현 9단의 스승 세고에 겐사쿠 9단과 일본 각료들이 서명한 ‘세고에반 세트’를 윤씨에게 맡겼고, 윤씨는 이 중 세고에반 세트를 2005년 일본인에게 1000만엔에 팔았으나 대금을 주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윤씨는 ‘세고에반 세트는 김씨가 나에게 선물한 것’이라며 2006 년 11월 판매되지 않은 우칭위엔반 세트를 돌려줬으나 유족들은 세고에반 판매대금 요구와 함께 그나마 돌려준 우칭위엔반 세트마저 바둑알이 진품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부산지법 제8민사부(재판장 김동윤 부장판사)는 최근 선고공판에서 “윤씨는 1000만엔을 김씨 가족들에게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가진 윤씨는 “조용히 지나가려 했으나 개인뿐만 아니라 바둑계, 후배 프로기사들의 명예를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입을 뗀 뒤 자신의 결백을 되풀이해 주장했다.
윤씨는 현재 항소심을 준비 중이며 부산에서 고인과 친분이 있던 3∼4명의 증인들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줄 것이라 말했다.
특히 윤씨는 고인과의 30년 우정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기정유도(棋正有道)’의 삶을 살아온 만큼 항소심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했다.
윤씨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깊은 얘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응답한 뒤 10분 여 만에 회견장을 떠났다.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유족 측은 “처음에는 친한 사람에게 선물로 줬다고 하다가 나중에야 팔았다고 시인했다. 정확한 액수도 말해주지 않았으며 원화로 돈을 받았다가 엔화로 받았다는 둥 법정에서조차 말을 바꿨다”며 회견 내용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한때 국수까지 올랐던 분인데 너무 실망스럽다.” “설사 윤씨의 말이 옳다고 해도 판매한 대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윤씨를 성토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