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세월은간다

입력 2008-08-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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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안 좋았지?” 유창혁 9단이 반상 한 군데를 가리켰다. 이창호 9단은 늘 그렇듯, 그저 들릴 듯 말 듯 수긍해 보일 뿐이다. 바둑은 이창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백의 9집반 승. 이 정도면 대차가 났다. 이창호의 완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10년 전만 해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때는 어쩐지 선생과 제자 같은 분위기였다. 패자 유창혁은 승자처럼 당당했고, 승자 이창호는 교무실에 끌려온 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그런 모습은 흑백사진처럼 빛이 바랬다. 유창혁도, 이창호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같이 늙어가는 것이다. <실전> 흑5로 나가는 대신 <해설1> 1로 끊는 수를 떠올리는 사람은 하수. 백4로 끊기면 당장 후회할 거리가 생겨버린다. <해설2> 흑1로 두어 잡으러 갈 수도 없다. 역시 백4가 있다. 흑은 응수두절이다. 하변의 백이 냉큼 살아서는 바둑 끝이다. 판이 좁아져 더 이상 해 볼 데가 없다. 이렇게 해서 B조 리그 1승자 간의 대결은 이창호가 이기며 2승으로 성큼 앞서 나가게 됐다. 이창호의 남은 관문은 백홍석이다. 그는 유창혁에게 1패를 당했다. 이창호가 백홍석에게 진다면 셋이서 물고 물리는 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승부란 게 그렇다. 축구공만 둥근 것이 아니라 바둑돌도 둥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반상에서의 승부이다. 유창혁이 길게 기지개를 켜더니 고개를 숙였다. 이만 하자는 얘기. 두 사람은 묵묵히 돌을 치우고는 자리를 떴다. 아주 오래도록 보아왔지만, 여전히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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