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이란 음악적 은하’를 향해 쏘아 올린 인터뷰

입력 2024-03-15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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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서영은은 내게 신비의 가수였다.
‘특별히’ 더 하는 것이 없어 보이는데, 그의 노래는 모든 것이 ‘특별’하게 들렸다.
그의 음색에 매료되었다가, 그의 명징한 딕션을 탐닉하기도 했고, 그의 신비함의 원천을 젊은 시절의 재즈에서 발굴해보려 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의 만남으로 ‘서영은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노래의 ‘특별한 것’만큼은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심경으로 이번 인터뷰를 준비했다.

“선배님, 이렇게 뵙게 되네요.”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주먹만한 달 같은 얼굴을 한 서영은이 웃으며 들어왔다.
서영은은 꽤 오래 전부터 나를 부를 때 꼭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중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 대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계도 아니고(이건 민증을 까면 선후배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서영은의 초등학교 선배다. 숙명여고와 담장을 사이에 둔 대도초등학교로 내가 1기 졸업생이고 서영은은 4, 5년쯤 뒤에 다녔을 것이다.
서영은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유일한 초등학교 후배가 된다.

“이번 신곡 굉장히 좋던데요?”
며칠 전 서영은은 신곡 ‘걱정마요’를 냈다. 마지막 앨범이 아마 2년 전이었던가. 서영은만의 음색과 온기를 잔뜩 품은 가사,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이 돋보이는 멋진 곡이다. 듣고 있으면 어쨌든, 힘이 나는 노래다.


-언제 녹음하신 거죠?

“녹음은 두바이 가기 전, 12월에 끝냈어요.”


-이번엔 직접 가사를 쓰시지 않았네요.

“민연재씨가 가사를 썼어요. 조금 첨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부분만 살짝 수정을 했죠. 너무 좋았어요.”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서영은도 생각이 많았다. ‘걱정마요’는 서영은이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제 주변에도 친구, 지인, 동생들이 많은데 그들도 힘들어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녹음이 끝나고 모니터링을 부탁할 겸 들려줬는데 다 울어요. 마음에 힘든 일들이 있는 분들에게 좀 와닿는, 그런 노래 같았어요.”



●두바이와 한국, 서영은의 ‘이중생활’

서영은은 알려져 있듯 두바이와 한국을 오가며 ‘두집살림’을 하고 있다. 가수로 활동하는 시기에는 국내에 들어와 있다가 기간이 끝나면 두바이로 돌아간다. 남편과 아들이 두바이에 있고, 한국에 있을 때는 부모님 댁에서 지내는 패턴이다.


-두바이와 한국을 오가는 일상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장점은 …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워라밸이 나름대로 맞춰진다는 것? 여기(한국)서는 완전히 일만 하고, 두바이에 돌아가서는 완전히 쉬는 거니까요. 거기선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거든요. 일상이 단조로우니까.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도 하고요.”

서영은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이틀에 걸쳐 서영은의 노래를 잔뜩 들었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 그의 팬들이 정성껏 만들어 올려놓은 ‘서영은 선곡집’ 같은 것을 골라 반복 재생했다.


-지금도 서영은씨 노래들이 머릿속에서 윙윙 돌아다니는 느낌인데요. 리스트를 듣다보니 리메이크도 꽤 하셨네요?

“리메이크 앨범이 석장이나 나왔거든요. 시리즈3까지 있었어요.”


-리메이크 곡을 그렇게 많이 부르신 이유가 있었나요.

“새 앨범이 나오고, 활동을 하고, 끝나면 두바이로 돌아가잖아요. 그리고 한국에 나오면 지난 번 앨범으로 또 활동을 할 수가 없다보니 리메이크 앨범을 냈어요. 그렇게 3개를 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 ‘서영은은 리메이크만 중점적으로 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까지 계시더라고요(웃음).”

확실히 서영은이 리메이크한 음원들은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서영은이 리메이크한 곡들을 듣고 있으면 꽤 흥미로운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가수들이 다른 가수의 곡을 리메이크하면 듣는 쪽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원곡자와 비교를 하면서 듣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희한하게 서영은씨의 리메이크 곡들을 듣고 있자면 원곡자를 까맣게 잊게 된다는 거죠. 심지어 ‘이게 원래 서영은의 곡이던가’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듣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무슨 현상일까요? 마치 원래 서영은씨의 노래처럼 착 붙는, 그런 느낌.

“리메이크할 때 원곡을 많이 깨려고 하지 않아요. 제가 공감이 되도록 부릅니다. 굳이 튀려고 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좀 편안하게 들어주시는 것이 아닐까 … 다르게 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이질감이 생길 수 있거든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리메이크라고 해서 자신의 소리를 바꾼다거나, 색다른 창법을 무리하게 시도하는 따위는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갖고 있는 것으로, 그냥 부른다. 그래서 더욱 서영은의 노래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두바이와 한국, 두 곳 생활의 단점도 있겠죠?

“가장 큰 것은 한국에 나와 있으면 아이를 보지 못한다는 거겠죠. 가수 활동 면에서는, 일단 한국으로 오면 계속 시차에 적응해야 하고요. 두 달 정도는 노래를 안 하다가 해야 하니 …”


-두바이에 계실 때는 전혀 노래를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무대에 서는 일은 없잖아요. 그건 좀 다른 얘기거든요. 저한테는 무대의 단절이 뭐랄까 … 경단(경력단절)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컨디션을 만드느라고 애를 많이 쓰죠.”



●8을 타고 나고, 2를 노력한 사람

이제 슬슬 인터뷰의 핵심으로 향할 시점이 되었다.
긴 질문이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꽤 오래 서영은씨의 노래를 들어온 것 같습니다. 아마 몇 번 정도 리뷰 기사에서 언급한 적도 있는데요. 서영은씨는 1000명 중에 섞어 놓아도 눈 감고 구별할 수 있는 음색과 톤을 갖고 계시죠. 딱히 특별한 기교를 내세우지 않음에도 ‘정말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느낌을 듣는 이들에게 줍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를 타고 나야 하고, 어느 정도를 훈련해야 하는 걸까요.

“아아 … 그건 정말 애매하긴 한데요. 아무래도 (신께서) 주신 게 일단 크죠.”

서영은은 즉답을 미루는 대신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반 대항 합창대회가 열렸어요.”

서영은은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쳤다. 상당한 실력이었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안고 클래식 아티스트 ‘정통코스’의 첫 관문으로 불리는 예원학교 입학을 준비했다고 한다.

“떨어졌어요. 결국 일반 중학교로 진학했죠.”
선생님은 반 대항 합창대회를 위해 학생들을 모아놓고 맹렬한 트레이닝을 시켰다. 반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반주는 서영은의 몫이 됐다.
“엄청 피아노를 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반주를 하게 된 겁니다.”

서영은의 반은 1등, 또 1등을 거쳐 최종 서울시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1년 내내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합창연습에 참가해야 했다.
서영은은 피아노 반주를 하며 합창에 가세했다. 이때의 길고 독한 연습과 훈련은 서영은으로 하여금 노래에 눈을 뜨게 해주었고, 발성에 대한 기초 훈련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7 대 3 … 아니면 8 대 2.”
그렇다. 서영은의 노래는 타고난 것이 7 또는 8, 훈련이 3 또는 2였다.


-당시 같이 합창대회를 준비했던 친구들이 평생 써 먹을 것 같은데요.

“?”


-“가수 서영은 알지? 걔 내가 노래할 때 반주하던 얘야”라고 말이죠.

“푸하하하!”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서영은은 가톨릭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 대학가요제에 나갔다.
“갑자기 나가게 된 터라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어요. 3일 만에 곡 하나를 만들어서 예선에 나가긴 했는데, 심사위원께서 첫 소절 듣더니 바로 ‘땡’ 하시더라고요. 하하!”

그렇다. 그 심사위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 술자리에서 이날의 일을 안줏거리로 활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서영은이 알지? 걔 대학가요제 나왔을 때 내가 첫 소절만 듣고 바로 ‘땡’ 쳤다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해의 우승자는 김동률이었다고 한다.



●재즈 보컬리스트 서영은…1집 이후 대중가수로 전환

서영은이 원래는 재즈 보컬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학 시절에는 교회에서 주로 CCM을 불렀고, 이후 재즈를 했다. 당시 함께 했던 멤버들이 지금은 영화, 드라마 등 대중음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알만한 인물들이라고 했다.

“그때는 한창 재즈가 유행이었거든요. 친구들과 재즈카페에 놀러갔다가 피아노가 있길래 우연히 노래를 하게 됐어요.”
서영은은 1998년 ‘Softly Whispering I Love U’ 앨범으로 데뷔하는데, 이 앨범은 재즈 앨범이었다. 들어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재즈보컬리스트 서영은’의 풋풋함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수 서영은’의 앨범 ‘雨尾(우미)’는 사실 2집이었던 것이다.

재즈를 부르던 시기를 서영은은 ‘굉장히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어린 친구가 재즈를 한다고 하니 재즈의 대선배들이 많이 예뻐했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경험을 시켜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영은은 오래지 않아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할 수 있는 게 ‘여기까지’라고 딱 오더라고요. 더 이상은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유학을 가야 하나, 여기서 돌아서야 하나 … 고민을 했어요.”
결국 서영은은 재즈 보컬리스트에서 ‘대중가수 서영은’으로 전환하게 된다. 서영은은 “(재즈 선배님들께서) 많이 혼내셨어요”라고 했다.


-기자들도 심혈을 기울여 쓴 기사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간단하게 쓴 기사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거든요. 가수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혹시 별 기대없이 부른 곡이 엄청나게 히트한 케이스가 있었을까요.

“사실 ‘웃는 거야(2006)’가 그랬어요.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거든요.”

요즘은 싱글이 대세지만 예전에는 앨범이 나오면 CD 한 장에 10곡, 12곡씩 수록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경우 ‘미는 곡’과 ‘깔린 곡’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웃는 거야’는 깔린 곡이었다는 것.

“그냥 가볍게 들으시라고 쓴 곡이었어요. 가사는 열심히 썼죠. 타이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안 했어요. 사실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이 엄청 들어가 있는 곡을 밀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웃는 거야’가 뜬 거예요. 처음엔 ‘이걸 하라고?’했죠. ‘웃는 거야’를 라이브로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올해가 데뷔 25주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10년씩 한 우물을 두번 반이나 파신 건데요. 이쯤 되면 ‘이 곡은 뜨겠다’하는 촉이 생기실 법도 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없고요. 왜냐하면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안 듣는 곡이 많으니까(웃음). 그런데 ‘이 거지 같은 말(2010)’ 같은 경우는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무척 좋아해주실 수도 있고, 싫어하실 수도 있다는. 그건 분명히 있었어요.”



●음악을 듣고, 영상이 떠오르면, 비로소 가사가 된다


-확실히 ‘이 거지 같은 말’은 이전의 곡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달랐죠.”

서영은은 ‘이 거지 같은 말’의 경우, 작곡자가 쓴 멜로디를 듣자마자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순식간에 가사를 썼다고 했다.

“곡을 듣자마자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딱 들어서 바로 썼어요. 그런데 작곡가들은 좀 쎈 가사를 싫어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좀 … 어떻게 들으면 부드럽고, 기교가 딱히 없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가사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이 거지 같은 말’의 작곡자는 김세진, 서정진씨로 되어 있는데요. 작곡가들이 가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조금 싫어했어요(웃음). 심지어는 정엽 군도 싫어했죠(이 노래는 서영은과 정엽이 함께 불렀다).”

정엽이 난색을 표한 부분은 ‘통 빠지지 않아’라는 문장이었다고 한다. 특히 ‘통’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의 가사는 이러하다.

검게 멍이 들도록 때려 봐도
붉게 물이 들도록 울어 봐도
찌들고 찌들어 통 빠지질 않아
가시 같은 한 마디

서영은은 즉석에서 정엽에게 ‘통 빠지질 않아’를 ‘지워지질 않아’로 수정해 불러달라고 했고 그렇게 녹음이 진행됐다.
“다 부르고 났는데 마지막에 한 번만 해보자고 요청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정엽 군의 ‘통 빠지질 않아’를 받은 거죠.”

정엽으로서는 ‘당했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앨범은 마지막에 ‘딱 한 번’ 녹음한 ‘통 빠지질 않아’로 출시되었고, 이 노래는 가요차트 1위에 올라 대박을 터뜨리는 한편 서영은의 대표곡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모 아니면 도였는데, 모가 다섯 번쯤 연달아 나온 셈이다.


“지워지질 않아와 통 빠지지 않아는 진짜 너무 다르잖아요.”


생각해 보면 둘은 정말 많이 다르다. 지워지는 것은 물로 슥슥 문지르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빠지는 것은 세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것이다.


-‘이 거지 같은 말’은 가사 못지 않게 메이크업과 의상도 파격적이었습니다.

“맞아요. 하하하! 저로서는 굉장히 좀 엣지있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엣지가 없는 거예요. 얼굴도 둥글고 몸매도 둥굴고, 얘(머리카락)만 이렇게 아래로 내려와서는 …”


-가사를 쓰실 때 ‘한 방’에 쓰시는 편인가요, 오래 고치시는 편이신가요.

“그게 복불복이긴 해요. 곡을 듣고 있는데 영상이 떠오른다 … 이러면 그냥 표현만 하면 되니까 별로 어렵지 않게 금방 쓰고요.”


-아, 완성된 곡에다 가사를 붙이시는 건가요? 가사를 먼저 쓰고 작곡자에게 가져다주시는 것이 아니고요?

“거의 곡을 듣고 가사를 쓰죠. 그런 것(가사를 먼저 쓰기)도 있긴 해요. ‘첫 사랑을 찾습니다(2012)’는 가사를 먼저 쓴 거죠. 하지만 대부분은 듣고 씁니다.”


-가사를 보면 기자가 보기에도 어휘력이 굉장히 풍부하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전을 옆에 놓고 쓸 때가 많아요. 동의어 같은 것을 많이 찾아보죠. 가사를 미리 쓸 때는 전체를 써 놓는 게 아니라 표현들만 … (키워드 같은 건가요?) 네네, 키워드처럼 중요한 것들을 써놓으면, 나머지는 끼워 넣기만 하면 되니까.”



●두바이를 산책하며 서영은은 추리소설을 듣는다


-25년이나 무대에 서는 삶을 살고 계신데요. 아직도 대기실이나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두근두근 하시나요?

“완전 그렇죠.”


-그런 것은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무대가 매일 다르니까요. 무대도, 관객도. 똑같은 공연을 해도 굉장히 다르잖아요. 그날 컨디션도 다르고, 그날 분위기도 다르고. 그래서 공연 전에는 예민해져서 조심하는 편이에요.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그런 게 있어요. 최대한 기를 좀 모아야 되는 스타일이랄지. 조금 힘들어요(웃음).”


-가수의 가장 큰 재산은 역시 성대겠죠. 강한 성대를 타고 나셨나요? 아니면 관리를 많이 해주어야 하는 편인가요.

“저는 노래 자체가 막 지르는 게 별로 없어서요.”


-고음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한데 … 저는 트레이닝이 된 게 … 완전히 뽑아내는 쪽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경연을 하면 좀 불리해요. 해보니까, 저는 너무 지르면 좋은 소리가 안 나와요. 트레이닝 부족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일단 좋은 소리가 더 먼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 이건 서영은인데?’ 하는 부분이 있단 말이죠. 뭐라 딱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많은 분들께서 비슷한 말씀을 해주시는데요. 사실 제가 더 궁금하거든요. 그 부분이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 저는 사실 모르고 하니까(웃음).”


-에이, 왜 모르시겠어요.

“들으시는 분들께서 얘기는 해주시는데 … 제가 그 생각을 하면서 노래하는 건 아니라서요.”



-기억에 남는 무대를 하나만 꼽아 보신다면.

“많죠. 지금 딱 떠오르는 건 하나 있네요. 친동생과 SBS DNA싱어(2022)에 나갔던 무대요.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학교 밴드 보컬이었거든요. 목소리는 여전하더라고요. 평소 부모님께 살가운 딸이 아닌데, 방송을 기회로 동생과 행복한 추억을 드릴 수 있어서 저도 많이 행복했습니다!”

서영은은 ‘무대’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더 들려주었다.
한국에서는 톱가수 서영은이지만 두바이에서는 평범한 아내, 엄마로 살고 있다보니 서영은이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복절이었을 거예요. KBS 방송이었는데 DMZ에 들어가서 노래하는 거였거든요. 두바이에서는 외국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제가 가수라고 하면 다들 ‘그런가 보다’하는 정도였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내가 DMZ에서 노래를 했다’며 영상을 보여주면 엄청 놀라요. 굉장히 신기해하죠.”


-그 외국인들은 인터넷 검색 같은 것을 안 하고 사는 모양이죠?

“검색을 해도 딱히 제가 가수라는 게 와 닿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여주면 그제서야 재밌어 하면서 이해를 하더라고요.”


-서영은씨의 노래들을 들으면 일명 ‘서영은 템포’라고,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 한도의 ‘빠른 곡’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맞아요. 네네.”


-빠른 곡을 부르실 때도 움직임은 거의 없으시단 말이죠.

“아무 것도 없죠. 손만 약간 … 흐흐”


-안무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신 건가요.

“공연 때 시도를 해보긴 했는데요(웃음). 지금은 안 합니다만 예전에는 공연 2부 첫 곡은 항상 빠른 곡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안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안무선생님들이 항상 저한테 ‘할 수 있다’고 그러셨죠. 그런데…”

안무 선생들은 서영은에게 ‘자신감을 가져라.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데 연습이 진행되고, 시간이 흐르면 점점 초기에 짠 안무 동작이 줄어들면서 단순해지는 것이었다.

“계속 하나 둘씩 빼고, 나중에는 옆에 몇 사람을 붙여주시더라고요. 도저히 안 되니까. 저는 결국 손만 좀 이렇게 들면… (웃음)”


-긴 시간이라면 긴 시간 동안 서영은씨의 노래를 들어온 한 사람으로서 궁금합니다. 외모도 외모지만, 어쩌면 그렇게 목소리가 나이를 먹지 않는 걸까요. 예전에는 앳돼 보이는 외모에 비해 훨씬 성숙한 느낌의 목소리였는데, 이제는 외모와 목소리가 딱 맞는 것 같단 말이죠.

“사실 저도 (목소리에) 나이가 드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육아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일들이 힘들어지고, 몸도 정신도 버거웠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목소리가 달라졌던 거죠.”

하루는 친구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요즘 어쩐지 나이 들게 노래하는 것 같다고.
“뭔가 (강박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쯤 되었으니 노래에 세월을 담아야겠다 … 이 정도 경력이 되었으면 그것에 맞는 느낌을 내야 되지 않나 … 하는 것. 원래 저는 뭐랄까 … 약간 남자 청소년? 그런 소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건강한 목소리라고.”

마침 한국에 들어와 전국투어를 할 기회가 생겼다. 서영은은 “다시 제대로 해야 한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내가 이 정도 경력이니까 … 이런 나이가 되었으니까 이런 느낌, 이런 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버렸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냥 나는 나니까. 언제든 나니까.”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부르시는 노래의 가사도 그렇고, 평소 SNS를 보면 굉장히 글을 잘 쓰신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혹시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오지는 않았나요.

“있긴 했어요. 여행 쪽이라든지. 사실 생각을 해보고는 있어요.”

서영은은 “이건 좀 웃기는 얘기인데 …”라며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추리소설”이라고 했다. 추리, 호러, SF 마니아다. 서영은의 노래나 가사를 접하면서 그가 감성적인 글, 에세이 쪽이라 생각했는데 대단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이 든다고 했다.


-추리소설이라 … 생각해보니 문과가 아니라 이과셨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전 사실 국문과를 가고 싶어 했어요. 문과를 가고 싶었는데 생물학과를 가게 된 케이스죠.”

선생님의 강권에 못 이겨 이과를 갔지만 수학이 너무 어려웠단다. 그럭저럭 성적이 괜찮았던 수학도 고2 올라가면서 미분, 적분에서 덜컥 걸려버렸다. 생물학과 가면 미적분을 안해도 될 줄 알았는데, “가보니 삼적분이 있더라고요”하며 크게 웃었다.

두바이에서는 산책을 자주 한다고 했다. 아이를 등교 시키고 나면 곧바로 산책을 나가 1시간 정도를 빠르게 걷는다. 걸으면서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한다.
“오늘은 비운다 … 오늘은 채운다… 이런 것들이 있어요. 음악을 들으며 걷기도 하지만, 추리소설을 들으면서 걷는 날이 많죠.”

다시 추리소설로 돌아왔다. 요즘은 오디오북으로 나오는 추리소설도 많단다.
가수 서영은은 평소 어떤 음악을 즐겨 들을까 궁금했는데, 추리소설을 듣고 있었다.
“재즈를 많이 들어요. 우리 시대의 가요도 많이 듣고요. 그런데 사실은 주로 추리소설을… 하하하”
으스스한 호러소설을 들을 때는 걸음도 빨라진다.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빨라지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랄 정도로 빨리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걷다가 뭔가 예사롭지 않은 장면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요. 사진을 찍으면서도 영감이 많이 오거든요.”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쯤에서 통상적으로 묻는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따위의 질문은 부질없을 것 같고요. 대신 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수로서 또는 인간 서영은으로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 질문의 포인트는 ‘꼭 할 것이다’라기보다는 ‘해보고 싶다’에 있습니다.

“아까 살짝 말씀을 드렸죠. 책입니다.”


-그거 좋네요. 역시 추리소설일까요?

“추리소설을 써보고 싶긴 한데요. 사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국내 추리소설 작가분이 계세요. 그 분이 추리소설을 쓰는 법을 SNS에 공개하신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는 바로 포기했죠(웃음). 추리소설이 아니더라도 한 50년 살았으니까, 뭔가 남기고 싶긴 해요.”

긴 인터뷰가 끝났다. 많이 물었고, 집중해서 들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세워 두었던 그의 노래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내겠다는 야심찬 목표는 코끼리 다리의 투박하고 거친 피부를 손톱으로 긁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겠지만, 그래도 서영은이라는 거대한 음악적 은하를 탐사하기 위한 보이저호 하나를 띄운 것 같아 위안을 삼기로 했다.

언젠가 서영은이 쓴 추리소설 한권을 들고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다.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그는 신비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로 가득한 가사로 독자들에게 치열한 두뇌싸움을 걸어올 것이다.
슬슬 창밖 안산과 인왕산 위로 회색과 붉은색이 잔뜩 뒤섞인 빛이 내려앉는다.
다시, 서영은 플레이 리스트를 꺼낼 시간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에이사이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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