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세영의 어쩌다: ‘이따금 어째서 왜?’로 시작된 이슈 뒤집어 보기. 전체 맥락, 행간을 짚어내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담아내는 코너.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 속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어린 시절 정지소 분) 속마음 내레이션이다. 작품 서사를 가장 잘 표현한 대목이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존재감 없던 학교 폭력 방관자가 피해자가 되고, 다시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로 가해자가 되는 이야기다. 짓밟힌 인간 존엄성을 되찾는 희망찬 설정은 없다. 화해와 용서도 없다. 평범한 복수도 생략한다. 오직 학교 폭력 가해자가 메말라가는 과정을 보고픈 이미 메말라 버린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만 존재한다.
무엇보다 ‘더 글로리’는 그동안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과 맥을 같이 한다. 10대 일탈을 다룬 ‘인간수업’(극본 진한새 연출 김진민), 탈영병 등 왜곡된 병역 문화를 밀도에 그린 ‘D.P.’(극본 한준희 김보통 연출 한준희), 소년 범죄, 촉법 소년 문제를 다루며 사회적인 공론을 이끈 ‘소년심판’(극본 김민석 연출 홍종찬), 이젠 보편화된 소개팅 앱 그 이면을 다룬 ‘썸바디’(극본 정지우 한지완 연출 정지우) 등이 작품을 넘어 한 번쯤, 이제는 문제 삼고 짚어야 할 이야기를 담는다.
‘더 글로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갑질, 직장 내 성희롱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더 글로리’ 속 폭력 핵심은 먹이사슬이다. 친구라는 틀, 동문·동창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를 향한 차상위 포식자들의 비굴함과 이중성을 고스란히 담는다. ‘강한 자에게 비굴하고 약한 자에게 고약한’ 작품 속 기회주의자들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의 불편함을 담아낸다.
피해자들 연대도 뻔하지 않게 그린다. 타인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이들이 서로 연민하고 복수를 꿈꾼다. 생판 남으로 언제 깨져도 이상할 것 없는 관계지만, 각자의 ‘아픔’은 상대를 향한 믿음의 증표가 돼 결속된다. 복수라는 카테고리 속에 ‘피의 연대’를 도모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불쌍하고 애처롭기보다 불안하지만, 이유 있는 공조를 보여준다.
최근 다양한 작품에서 학교 폭력을 비중 있게 다룬다.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 영웅’(극본 유수민 연출 유수민 박단희),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연출 김대진 김상우 극본 탁재영), 디즈니+ ‘3인칭 복수’(극본 이희명 연출 김유진) 등은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 폭력이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다. 그리고 이를 작품으로 녹여내는 요즘 콘텐츠. 불편하고 알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는 진실이 작품마다 다른 방향,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각 작품이 우리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하나다. 인간 존엄을 해치는 폭력은 언젠가 되돌아온다는 진리다. ‘더 글로리’는 그 이야기를 서슬 퍼런 한 여자의 치밀하고 오랫동안 준비한 복수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