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호시탐탐…‘개방이냐보호냐’아시아야구의고민

입력 2008-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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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신(新)시대, 일본야구가 메이저리그의 2군이 되는 날.’ <뉴스위크> 일본판의 2002년 7월 17일자 헤드 카피다. ‘야큐(野球)’가 아니라 베이스볼(Baseball)이라 표기한 점이 눈에 띈다. 표지 모델은 당시 LA 다저스의 선발 이시이 가즈히사(현 세이부). ‘태평양의 벽이 무너질 때’란 제하의 기사는 ‘이치로 신조 이시이 등의 활약으로 일본 내 선수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의 2군(farm)이 되는 날이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일본의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다. 스타 선수의 ML 러시로 일본야구는 관중 수 감소와 아마 유망주의 미국행 촉발이란 두 가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일례로 이치로가 빠져나간 오릭스는 이듬해(2001년) 16.4의 관중 감소를 경험했다. 마쓰자카가 떠난 세이부 역시 2007년 스프링캠프 관중부터 급감했다. 다구치와 신조의 미국행은 ‘평범한’ 일본 선수들에게도 ‘빅리그는 꿈이 아닌 현실’이란 자각을 안겨줬다. 구단수가 30개까지 확장돼 선수층이 얇아진 메이저리그는 아시아를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의 구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연장선상에서 2002년 1월엔 ‘국제 드래프트’ 제안까지 ML 구단주 회의에 상정된 바 있다. 쉽게 말해 한국 일본 대만 쿠바 선수도 ML 신인 드래프트에 포함시켜 자금력이나 스카우트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구단도 해외 선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뉴스위크>는 일본야구가 빅리그의 팜이 되지 않으려면 세리에 A, 프리미어리그가 공존하는 유럽축구처럼 대등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모(1995년 ML 진출)와 이치로를 키운 오기 아키라 전 오릭스 감독도 장기적 안목에서 미국행을 찬성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통해 갈파했듯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화의 시대에서 야구팬들이 중시하는 것은 피부색이 아니라 유니폼 색깔이다. 이미 ML 4분의1 이상이 미국 국적이 아니고, 이 숫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문을 열었다간 경쟁력이 약한 아시아 프로야구는 초토화되기 십상이다. 일본은 용병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에이전트 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FA까지 9년(미국은 6년)이 걸린다. 그렇기에 FA 취득 이전에 구단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이적료를 챙기는 우회로를 택하기도 한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과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보호무역론이 충돌하는 대상은 쇠고기 만이 아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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