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겨냥‘언론플레이’…방어율격차커지자포기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SK 김성근 감독(사진)은 ‘언론 플레이의 달인’이다.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해서 감독의 카리스마를 손상시키는 대신, 신문을 통해 흘려서 깨닫게 하는 활용법은 기본이다. 필요하다 판단되면 팀 내부와 상대팀을 겨냥해 역정보나 심리전의 도구로도 이용한다. 이런 김 감독이 투수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한 김광현의 등판 스케줄을 두고 전개한 언론 플레이 솜씨는 -비록 의도를 관철하진 못했지만-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왜 김광현 위장 등판설을 흘렸을까
김 감독은 3일 광주 KIA전 직후 “김광현을 5일 히어로즈전에 등판시킬 수도 있다”라고 전격 선언했다. 그 전까지 “3일 KIA전이 끝. 김광현이 거기서 알아서 해라”고 했는데 말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막상 5일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김광현을 등판시킬 의도가 애당초 없었다고 털어놨다. ‘5일 추가 등판설’은 4일 KIA 윤석민을 최대한 오래 던지게 하려는 ‘미끼’였다. 이 말을 경계한 KIA 벤치와 윤석민은 4일 광주 두산전에서 7이닝(무실점)을 던졌다. ‘최대한 긴 이닝을 던지다 보면 실점 확률도 커지지 않겠느냐’는 김 감독의 포석에 걸려든 셈이다.
그러나 윤석민이 단 1점도 주지 않아 김 감독의 계산은 막판에 빗나갔다. 김광현의 방어율이 윤석민을 다시 제치려면 4.1이닝 무실점을 해야 되는데 간격이 너무 커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적을 만들어 우리 편을 단결시킨다?
그렇다면 김광현을 아예 5일 히어로즈전으로 돌리는 방안도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방어율 외에 탈삼진 1위도 신경써줘야 했다. 데이터 상 김광현이 KIA 상대로 삼진을 많이 잡아왔기에 3일 굳이 선발로 올린 것이다. 이닝을 7회(비자책)까지 길게 던진 것은 김광현의 의향을 들어준 결과였다. 실제 김광현은 12개의 삼진으로 한화 류현진의 추가 등판을 봉쇄, 다승-탈삼진 2관왕을 차지했다.
또 홀드왕 정우람, 승률왕 채병용도 김 감독의 노심초사가 반영된 작품이었다. 특히 채병용의 패전을 방지하기 위해 9월 24일 LG전 승리로 승률 1위(10승 2패) 조건을 채우자 막판 2경기에 불펜으로만 투입했다. 김 감독은 “다른 투수가 힘들까봐 안 쓸 순 없어서 뒤지고 있을 때만 던지게 했다. 혹시라도 동점이 되면 바꾸려 했다”고 고백했다.
그 결과 SK는 세이브와 방어율을 제외한 투수 4개 부문 타이틀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승했지만 단 한명의 수상자도 없었던 작년에 비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당하는 팀이나 투명한 승부를 원하는 언론의 시선은 곱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팀 SK는 공고해진다는 점을 노련한 김 감독은 간파하고 있을 터다. 거의 죽도록 다그쳐도 선수들이 김 감독을 따라오는 것은 바로 이렇게 과실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 김영준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