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속죄의심정으로팀화합앞장…사우디전은박지성에완장돌려줘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정말로요….”
‘한국 최고의 수문장’ 이운재(35·수원)가 1년 여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경기(20일)를 앞두고 10일 오후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소집돼 첫 훈련을 마친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까지는 1년 4개월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색함은 없었다. 작년 7월 아시안 컵 대회 기간 중 음주사건으로, 그 해 11월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를 통해 대표팀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이후 오랜만에 파주를 찾았지만 취재진을 향한 밝은 인사 속에서 오히려 여유로움 마저 느껴졌다.
축구 선수로는 ‘환갑’이라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운재는 올 시즌 건재를 과시했다. 올해 K리그 정규리그를 평정한 수원의 주전 수문장으로 총 37경기에 나서 27골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경기당 평균 0.73실점. 대표팀 주전 경쟁을 벌일 정성룡(성남)과 김영광(울산)이 각각 경기당 0.82실점과 0.97실점을 했으니 경험은 물론 실력으로도 이들을 압도한다. 2002월드컵과 2006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 대회를 두루 경험한 그는 1년을 쉬었지만 A매치 109경기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권위 의식은 모두 버렸다. “파주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낯설었지만 다시 필드에서 땀 흘리다보니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라는 이운재는 먼저 후배들에게 다가가는 고참이 되겠다고 했다. “후배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화와 융화를 위해 나 스스로가 어려질 수 있도록 하겠다. 나부터 다가서겠다.”
이운재는 후배들에 대한 칭찬과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김)영광이도, (정)성룡이도 좋은 실력을 지녔다. 나 역시 단 한 번도 붙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주어진 선택의 길에서 최선을 다했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원정에 앞서 15일 카타르와 평가전 임시 주장을 자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훈련에 앞서 이운재는 송정현(32·전남)과 함께 허정무 감독을 직접 찾아가 주장을 맡고 싶다고 자원했다. 어려울 때 고참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음주 파문에 대한 속죄의 심정도 숨어있는 듯 했다. 이에 대해 대표팀 후배들은 한결같이 “든든한 거목이 돌아온 느낌”이라며 이운재의 복귀를 반겼다. 물론 사우디전에는 박지성(맨유)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준다.
파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