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 정도는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체험을 할 때마다 떨어진 체력을 원망해왔기 때문에(믿거나 말거나 군 시절, 1500m를 4분40초에 주파했다) 조금이라도 쉬워보이는 종목과 포지션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쓰곤 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축구 골키퍼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움직임이 적은 까닭에 만만해 보였다. 아니,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단 것을 불과 한 시간 반 만에 깨닫게 됐다.
○진지한 마음 자세가 먼저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21일 오전 K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 아쉽게 탈락한 경남 FC 선수단이 합숙하고 있는 함안 클럽하우스를 찾았지만 조광래 감독은 보이지 않았다.
내년 용병 확보를 위해 브라질로 출장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대신, 박문출 홍보팀장과 윤덕여 수석코치, 박철우 골키퍼 코치가 마중을 나왔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들을 보고 안심하던 찰나, 윤 코치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화끈하게 해드릴게요. 조 감독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습니다. 우선 커피 한 잔,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시죠.”
미리 구단에서 준비한 골키퍼 유니폼과 장갑을 착용하고, 숙소 인근에 위치한 함안 공설운동장 그라운드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몸을 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애써 여유로운 척 웃음을 보였지만 이광석 선수, 신승경 선수와 함께 서 있던 박 코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지마요. 운동할 때 누가 이빨을 보입니까?” 뭔가 크게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곧 현실이 됐다.
고참 이광석 선수의 구령 하에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먼저 풀어줘야 슬라이딩이나 볼 캐칭을 할 때 다치지 않는단다. 한데,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심지어 왼 다리와 왼 팔이 함께 움직이는 어처구니없는 동작까지 나왔다.
“세상에, 어지간한 몸치네. 군대는 다녀왔어요? 제식 동작은 알아? 어떻게 그렇게 운동을 못해?”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더 험난한 고비가 남아있다는 것을 그 때만 해도 몰랐다.
○집중, 또 집중…안그러면 다쳐!
한참 스트레칭에 열중하고 있을 때 박 코치와 신승경 선수가 검정색 덩어리(?) 2개를 들고 왔다. 헬스클럽에서 흔히 사용되는 메디신볼이었다.
무게가 자그만치 5kg. ‘아니 골키퍼가 왜?’ 의문이 풀리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연성과 근력 강화를 위해 여러 동작을 취하란다. 머리 위로 팔을 올리고 메디신볼을 주고받는 훈련, 다리를 살짝 벌린 채 허리를 굽히고 ‘8자’ 모양으로 돌리는 훈련 등 여러 동작을 반복했다.
팔이 휘어지고 볼을 번번이 놓쳐가며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때, 박 코치가 이번에는 볼을 하늘 높이 던져 주고받기를 하자고 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훈련. 자칫 잘못하면 얼굴을 정통으로 맞을 수도 있다.
손동작도 중요하다. 배구 토스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손 전체를 활용해야 한다. 또 볼을 캐치한 뒤 곧바로 가슴 쪽으로 당겨야 한다. 안전한 볼 처리를 위해 요구되는 동작이다.
예상대로였다. 두어번쯤 볼을 주고받다가 그만 볼을 놓치고 말았다. 창피한 마음에 표현은 못했지만 코 뼈가 주저앉은 줄 알았다. 한술 더 떠 박 코치는 위로의 말 대신, 채찍질을 가했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가자미 실눈을 뜨니 그렇지. 정신차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자존심도 조금 상했다. 명색이 축구를 취재하는 사람인데….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주저앉자 “운동하다 한 번 앉으면 영원히 쉬고 싶을 것”이라고 면박을 준 박 코치는 이어 쐐기를 박았다.
신승경 선수에게 물병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뒤 던진 촌철살인 외마디. “이 분, 물 좀 먹여라.”
○밸런스와 안정된 볼 처리를 향해
속으로 ‘볼은 언제 만지는 거야’라며 불평을 삭이고 있을 때 마음을 읽었는지 박 코치가 “공놀이를 해보자”고 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이제 진짜 훈련을 하겠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볼을 만지자 정말 가볍게 느껴진다. 당연하다. 5kg과 300g의 차이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박 코치는 골대에 부착돼 있던 밴드를 허리에 착용하라고 지시했다.
근력을 키우고 몸의 밸런스를 이뤄주기 위함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밴드를 묶은 채 볼 캐칭 시범을 보인 이광석 선수의 모습을 보고 자신감이 들었지만 늘 그래왔듯 착각이었다. ‘쉬워보이는’ 동작치고 진짜 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상 밴드를 착용하자 앞으로 잘 나가지도 못했다. 기를 쓰고 인상을 찌푸리며 일정 지역까지 한걸음씩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으나 볼을 받을 때는 균형이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무릎을 안쪽으로 굽히고, 볼을 손 전체를 이용해 잡고 가슴쪽으로 끌어안는 훈련. 하지만 되는 게 없었다. 균형을 이루면 볼 처리가 이상하고, 볼을 잡으면 균형이 무너졌다.
이젠 당연한 수순. 서서히 포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좌우로 슬라이딩을 하며 볼을 낚아채기, 공중에 던진 볼을 캐칭하는 동작을 수 차례 반복하자 빈사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머리까지 핑 돌았다.
초겨울치고 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함안 그라운드를 가득 채웠으나 이미 그런 달콤한 느낌은 느낄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 “한 번만 더!”를 거듭 외쳐댄 동행 사진 기자가 미웠다. 내내 괴롭힌 박 코치는 끝내 확인사살까지 했다. “고작 그거하고 힘들어? 저기 저 쪽에 가서 숨 좀 쉬고 있어!”
함안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