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운을 만든 福將 조범현

입력 2009-10-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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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범현. 스포츠동아DB

키워드로 본 조범현
전력분석 시스템 조차 없던 KIA 맡아
치밀함과 뚝심으로 팀 개조 우승 신화


맹장(猛將),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보다 으뜸이 바로 복장(福將)이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KIA 조범현 감독은 “보너스 게임을 치른다는 기분으로 하겠다”고 했다. “시즌 개막 전만해도, 우리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하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느냐”면서 “선수들이 잘 해준 덕분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듯, 단순히 운이 좋고 복이 많아서였을까.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빼어난 두 용병 투수에, 시즌 초반 팀이 어려울 때 ‘또 다른 용병’이라 볼 수 있는 김상현까지 가세했고 이후 팀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조 감독은 운에 기댄 게 아니라 운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평소 성격처럼 치밀하면서도 성실하게 팀을 운영했고 결국 KIA 감독 부임 2년째, 자신의 감독 생활 만 6시즌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란 영예를 안았다.

2007년 시즌 말, KIA 사령탑에 오른 그는 제대로 된 전력분석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열악한 시스템을 보고 놀랐다. 조 감독은 SK 사령탑(2003∼06년)을 지냈던 경험에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접목, KIA 구단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전력분석자료를 만들어갔다. 더욱이 장래를 내다본 팀 체질개선부터 시작해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단 의식 개조까지, 그에게 다가온 숙제는 엄청났다.

지난해 시즌이 한창이던 6월의 어느 날. 당시 야구계 첨예한 사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조 감독은 머쓱한 표정으로 “정말 미안하다. 내가 거기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야구에 적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해봤을 문제였지만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팀에 몰두했고, 결국 그는 앞에 놓인 숙제들을 하나둘씩 해결하며 폐쇄적인 KIA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갔다. 때론 미련해 보일 정도로 원칙을 지켰다. 옆을 돌아보는 사치스런 여유도 포기한 채 올 시즌에도 팀을 위해 모든 걸 바쳤고, 마침내 값진 열매를 맺었다. ‘광주 출신’이 아닌 그가 타이거즈 수장을 맡자 여기저기서 ‘흔들기’가 계속될 때도, 눈앞의 성적을 위해 유망주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하자고 할 때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지켜나갔다.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그는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 타이거즈를 감싸고 있다. 우리가 우승 할 것이다”고 선수단에 기운을 북돋았는데 그의 말은 딱 맞아 떨어졌다. 조 감독은 “여러 장수 중에 복장이 제일 좋은 게 아니냐”며 웃었지만 그는 사실 일찌감치, 그리고 철저하게 준비된 ‘우승 감독’이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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