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 기아타이거즈 대 SK와이번스 경기가 2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9회말 1사 기아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한 SK 채병용이 허탈하게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잠실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SK 채병용(27)은 원래 땀을 많이 흘립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 패배 직후, 고개 숙인 채 벤치에 쭈그려 앉은 땅바닥에 물이 흥건하더군요. 그런데 살펴보니 눈 주위가 벌겋습니다. 땀과 눈물이 뒤범벅된 자국이겠네요. KS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맞은 투수. 아무리 직업이더라도 눈물의 의미를 묻지 못했지만 짐작은 갑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8월의 어느 날. 문학구장 SK 재활군에 들렀습니다. 당시 만난 채병용은 서운할 정도로 퉁명스러웠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불쾌했겠지만 그의 처지를 떠올렸습니다. 결혼, 임신…. 내년 3월 태어날 아기 분유 값이라도 벌어야 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일본까지 가봤지만 우측 팔꿈치 수술 판정, 시즌아웃 선고…. 여기다 군 입대 영장까지. 자포자기한 자의 분노가 그런 걸까요?
그래도 꾹 참고 곁에 있으니 그가 먼저 입을 열더군요. 그 마음을. “수술을 할 때 해도 마운드에 올라 1구라도 던지고 군대에 가겠다.” 이유요? 막내아들 걱정뿐인 어머니, 11년 열애 끝에 프러포즈를 받아준 부인 송명훈 씨, 그리고 자식처럼 아껴주는 장인, 장모님을 떠올리며 그런 책임감을 느낀 듯합니다.
그 며칠 후 수건을 쥐고 섀도우 피칭에 열중한 그를 봤습니다. 마음을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귀(9월19일 한화전). 다음날 만난 채병용은 “팬들의 연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귀가해서 “부인을 말없이 꼭 안아줬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해야 3이닝이 한계일줄 알았습니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PO)를 앞두고 청백전에 등판했는데 직구 스피드가 120km이 나왔답니다. 사람들이 변화구 던진 걸로 의심할 정도였다지요.
그랬던 그가 PO 3차전, 직구 144km를 찍었습니다. 역전 3연승 후 KS에서도 채병용은 4차전 선발승을 거뒀고, 6차전 세이브를 거뒀습니다. 그 기간 채병용은 말을 아끼는 눈치였지만 다만 짧게 나눈 얘기 한 토막은 기억납니다. 2007∼2008년 KS를 떠올려 “포스트시즌용”이라고 하자 그는 “2003년 KS 6차전도 빼먹지 말라”고 받아치더군요. 예, 배짱과 근성의 채병용은 KS 불패였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7차전 마지막 투수로 그를 남겨둔 것도 그래서였겠죠.
그러나 7차전 9회말 1사 후 KIA 나지완의 홈런. 143km 직구는 공익근무를 앞둔 그의 마지막 1구가 됐습니다. 바로 1년 전 KS를 끝낸 그의 환호를 떠올리면 그 비장감은 더합니다. 카도쿠라의 부축을 받고 시상대로 마지못해 나갔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지 않았죠. 잠실구장을 빠져나가는 그를 둘러싼 SK 팬들은 “채병용!”을 외쳤습니다. 그는 모자를 벗었습니다. 채병용은 승리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 같네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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