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스포츠동아DB
삼성 박진만(33·사진)은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이범호(28)를 보자마자 악수를 건네더니 짓궂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신이 부상으로 빠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자리에 대신 투입된 이범호를 향한 농담 섞인 축하였다. 이범호는 선배의 말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범호는 올초 WBC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SK 최정과 함께 대표팀에서 탈락될 위기를 맞았다. 유격수 박진만이 심각한 어깨 부상으로 결국 하차할 때도 두 선수 대신 두산 손시헌이 합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함께 훈련을 했고 중요한 것은 팀워크”라며 이범호를 고집했다. 그는 믿음에 보답하듯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일본 다나카를 상대로 동점포를 쏘아 올렸고, 결승전에서는 9회말 2사서 일본 다르빗슈에게서 동점 적시타를 뽑아냈다. WBC를 통해 일본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범호는 결국 소프트뱅크와 계약했다.
만약 박진만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김 감독이 이범호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찰나의 선택이 인생을 뒤바꾸는 경우가 있다. 이범호에게는 비록 선택권이 없었지만 WBC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