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싱스페셜] “아듀 그라운드”…구대성 은퇴 선언

입력 2010-08-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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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구대성. [스포츠동아 DB]

은퇴 선언하기까지…향후 거취는?

왼쪽 무릎 부상·연봉 삭감 고충 못이겨
내달 2일 은퇴식…18년 선수생활 마감
한·미·일 3개리그 뛰며 91승 224S 업적
향후계획? 글쎄…가족과 시간 보낼 듯


또 하나의 별이 마운드에서 진다.

한화 구대성(41)이 15일 구단을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또 하나 ‘레전드’의 퇴장이다. 고질적인 왼쪽 무릎 부상 탓이다. 따라서 은퇴경기 없이 은퇴식만 치른다. 9월 2일 대전 삼성전 때 은퇴식과 기자회견을 함께 연다. 은퇴를 결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알려진 향후 거취는 없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의 은퇴 배경과 18년간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본다.


○2개월 넘게 끈 결정

구대성은 이날 은퇴 소식과 더불어 “18년간 많은 사랑을 보내준 팬 여러분과 묵묵히 옆에서 나의 야구인생을 함께 해준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누구나 야구에 대한 더 큰 욕심은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상황에서의 은퇴도 아름답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1993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에 입단해 일본 오릭스, 미국 뉴욕 메츠 등 한·미·일 3개국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2번째 주인공(1호는 이상훈)은 이렇게 짧은 고별사를 남겼다. 구대성이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혀온 때는 6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단과 합의가 이뤄진 시기는 이달 초. 은퇴의 직접 동기는 나이보다는 부상으로 풀이된다. 구단 관계자는 “구대성은 2007년 시범경기 때 왼쪽 무릎 안쪽 인대를 다쳤다. 이후 올해까지 계속 같은 부상에 시달려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구대성은 올해도 개막 직후부터 4월 15일 대전 SK전까지 고작 6게임에 등판한 뒤 재활군에서 머물러왔다.

구단의 처우도 은퇴 결심을 굳힌 또 다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4억7000만원, 2009년 3억원, 올해 2억원으로 급강하해온 연봉이다. 구단 관계자는 “아픈 데다 연봉도 많이 깎여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거취는?

대개 은퇴하는 선수들은 곧바로 해외연수 또는 지도자수업 구상을 밝힌다. 하지만 구대성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구단에도 명확히 의중을 전하지 않았다. 구단은 고별사에 어느 정도 그 윤곽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구단에서도 코치 기용 등과 같은 명확한 언질은 주지 않았다. 사실 한화에는 지난해 나란히 은퇴한 정민철과 송진우가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정민철은 현재 1군 투수코치로 일하고 있고, 송진우는 일본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구대성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넓지 않다.

 



○전설의 발자취

구대성은 한양대 졸업 후 프로에 들어와 올해까지 통산 568경기에 등판해 1128.1이닝을 던지면서 67승71패214세이브, 방어율 2.85를 남겼다. 1996년 다승(18승3패)·방어율(1.88)·승률(0.857) 3관왕을 차지하며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고 1999년 한국시리즈 MVP도 꿰찼다. 통산 세이브 2위, 통산 방어율 4위의 위대한 좌완이다. 2001∼2004년 오릭스에서 24승34패10세이브, 방어율 3.86을 기록했고 2005년 뉴욕 메츠에서 33경기를 뛰며 승패 없이 방어율 3.91을 올렸다.

태극마크를 달고서도 깊은 인상을 아로새겼다. ‘일본 킬러’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일본을 두 차례 상대해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때도 일본을 울렸다.

대구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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