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의 현장출동] 비장했던 라이벌전, 아쉬운 탄식만…

입력 2010-10-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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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들어보지 못하면 진정한 축구기자가 아니란다.”

축구를 오랫동안 취재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다. 그랬다. 스포츠의 진정한 묘미는 라이벌 전. 한국 축구로 말하자면 일본전이 갖는 의미는 대단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희석되긴 했어도 역사적으로 한일 양 국의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만큼은 말끔하게 씻어내지 못한 게 명백한 현실 아닌가.

독일과 영국의 내로라하는 축구 기자들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앙숙이 된 서로가 격돌하는 A매치 현장을 찾지 못하면 ‘시니어(Senior)’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지 못한다고 하니 한일전도 똑같다고 할 수 있겠다.

데스크로부터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일본전 취재를 가라는 허락이 떨어진 이후부터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다. 이번 한일전이 축구를 취재한 이후 맞은 첫 현장 방문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특별했고, 새로웠다. 국가대표팀이 모여 소집 훈련을 하는 파주NFC를 방문하는 길도 유난히 즐거웠다. 여느 때라면 조금 심드렁했을 법한 조광래호의 훈련도 평소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엿보였다. 긴장을 넘어 일종의 비장감까지 느껴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각급 연령별 남녀 대표팀의 선전이 계속돼 선수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평소보다 훨씬 진지해졌다”는 게 파주NFC 훈련장에서 만났던 대표팀 박태하 코치의 귀띔이었다. 사실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별 조언을 하지 않았다. 선수 개개인이 ‘알아서’ 긴장하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워낙 기대가 컸던 탓일까. 경기 내용은 그간의 기다림과 설렘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전반전에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뭔가 아쉬웠다. 더욱이 내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을 천명한 조광래호의 올해 시즌 마지막 A매치가 아니었던가.

현장을 찾은 K리그 모 구단 코치는 “선수들의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다. 패스와 이동 속도 또한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를 꺾은 일본의 경기를 미처 분석하지 않았다면 훨씬 어려운 경기를 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붉은악마의 열렬한 함성 소리보다는 탄식이 좀 더 많았다.

중반까지 가장 큰 함성이 터진 시점은 무릎 부상으로 결장한 박지성이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 전광판에 비쳐질 때였다.

손에 땀이 흐르고 피 말리는 90분은 유독 빨리 흘렀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후반전에 유병수와 차두리, 기성용 투입이 이뤄졌으나 “앗” 외마디 외침이 터진 위험한 장면은 일본보다 우리가 많이 허용했다.

결국 73번째 한일전의 최종 스코어는 0-0. 기다린 중계 캐스터의 흥분 섞인 승리 외침을 끝내 들을 수 없었지만 상암벌에서의 아름다운 한일전 취재 첫 경험을 한 것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상암 |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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