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여자하키 울어버린 銀 “金 따고 관심 받고 싶었는데…”

입력 2010-11-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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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타에서 4-5로 패한 한국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어요. 김종은(24·아산시청)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네요”라고 합니다.

경기를 마치고 걸어 나오는 골키퍼 문영희(27·KT)를 붙잡았더니 참았던 눈물이 터집니다. 그리고 한스러운 마음을 토해냅니다.

“금메달 따고 싶었는데…. 국민여러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차마 말을 잇지 못합니다. 문영희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뭅니다. “관심과 후원이 열악하니까요….”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목에 걸고 있는 메달 색과 같은 은빛입니다.

임흥신(43) 감독은 아버지 얘기를 꺼냅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6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금메달을 아버지 영전에 바치고 싶었는데….” 그리고 또 “죄송하다”는 말을 꺼냅니다.

‘대한민국 1호 엄마 하키 선수’ 이선옥(29·경주시청)은 맏언니답게 우는 동생들을 위로합니다. 출산 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복귀했기에 아쉬움도 컸을 텐데요…. 특히, 고된 훈련을 견디게 한 딸 강민(1)의 미소가 떠오른대요. 마지막 말은 또 “미안합니다”였어요.

하키선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자신들을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랍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운운하며, 불우이웃 보듯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대요. 그녀들은 세계최고 수준의 선수들이니까요.

언젠가 대표팀이 스폰서가 없어 스포츠음료를 못 마신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문영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물이 좋아서 그걸 마시는 거예요. 그렇게 보시는 것은 저희에게 도움이 안돼요.”

실업팀은 단 5개. 등록선수는 100명. 그것이 한국여자하키의 현실입니다. 하키가 인기스포츠인 네덜란드나 독일 같은 정도는 기대하지도 않는대요. 금메달을 딴 중국만 해도 베이징에 하키전용 돔구장도 있다고 하네요.

한국은 겨울이면 필드를 구경할 수도 없어 뛰어다니는 게 일입니다. 농어촌공사에서 회장사를 맡았지만, 예산문제 때문에 전지훈련은 언감생심입니다.

지도자들 처우요? 중국대표팀 김상열 감독은 억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지도자들은 3분의 1수준이래요.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임흥신 감독은 “선수들이 꿈을 꿀 수 없을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하나 받아본 것도 없는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도 미안한 것인지…. 이선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제일 잘하고, 제일 좋아하니까 (하키를) 계속 하는 거예요.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나가고 싶어요.” 그녀들은 꿈을 꿀 수 없는 조건임에도 미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상대 위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꿈을 지켜주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광저우(중국) ㅣ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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