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호랑이 김응룡 감독, 달리던 버스 세우고 “너 내려!…뛰어 와!”

입력 2012-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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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집보다 오래 머문다는 구단버스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사진은 2010년 7월 8일 잠실 두산전에서 패해 16연패에 빠진 KIA 버스를 둘러싸고 항의하고 있는 팬들의 모습. 스포츠동아DB

선수들이 집보다 오래 머문다는 구단버스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사진은 2010년 7월 8일 잠실 두산전에서 패해 16연패에 빠진 KIA 버스를 둘러싸고 항의하고 있는 팬들의 모습. 스포츠동아DB

김응룡, 해태 감독 시절 ‘버스 군기’
패배원인 제공하면 고속도로 하차령
선수 죽기살기 경기로 상위권 성적


편한 버스, KTX·비행기보다 선호
롯데 한시즌 3만km 이동 ‘최다 주행’
86년 KS 해태버스 방화사건 아픔도



구단 버스는 사연을 싣고


선수단 버스는 프로야구선수들이 집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무는 곳이다. 시즌 내내 원정을 다니는 선수들을 경기장까지 데려다주는 귀한 발이다. 잠시 피로를 풀 수 있게 해주는 은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구단 입장에서 보자면 귀한 자산을 한 바구니에 담아둔 위험한 ‘이동용 폭탄’일 수도 있다. KTX가 이동시간을 단축해줬지만 우리 선수들은 버스를 선호한다. 열차나 비행기를 탈 경우 역이나 공항까지 이동해서 기다려야 하고, 복장도 갖춰야 한다. 그냥 편한 차림으로 버스에서 자다가 새벽에 도착하면 숙소로 그냥 들어가는 생활이 체질에 맞는다고 한다.


○구단 버스 가운데 최고 스피드는 롯데?

롯데는 9개 구단 가운데 이동거리가 1등이다. 한 시즌에 3만km를 이동한다. 수도권 팀은 그보다 적은 거리를 움직인다. 두산은 2만2000km다. 수도권에 4팀이나 몰려있어 특혜를 보고 있다.

롯데 버스는 다른 구단보다 빠르다고 한다. 요즘 교통관련법이 강화돼 대형차량은 최대 시속 110km 이상은 낼 수 없다. 롯데 버스가 어떤 기술을 써서 다른 구단보다 빠른지 궁금하다. 삼성도 최근 버스를 바꾸면서 버스의 스피드업을 놓고 구단 내부에서 은밀히 얘기가 오갔다. 구단 직원이 류중일 감독에게 빨리 가는 방법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감독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어서 구단에 물어보라고 했다.



삼성은 몇 년 전 구단 버스의 사고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밤늦게 서울에서 대구로 이동하다 금강 휴게소 부근에서 접촉사고가 났다. 당시 고속도로에 다른 교통사고가 나 커브 길에 차들이 모여 있었다. 이를 보지 못하고 스피드를 내다 2차 충돌이 날 뻔했다. 위기의 순간. 경험 많은 운전기사들이 신기의 운전으로 대형사고를 막았다. 구단 버스끼리 스치듯 접촉하며 멈춰 선수들이 다치는 사고를 막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삼성은 두 기사의 공을 참작해 포상을 했다.


○선수단 버스 보면 팀 성적을 알 수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단 버스는 1대로 시작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선수들은 버스 한대에 구겨 앉아서 이동했다. 통로에는 야구 장비를 잔뜩 싣고서. 요즘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화 한 토막. 당시 MBC 청룡 버스기사는 훈련 때 피칭머신에 배팅볼을 넣어주는 일도 했다. 선수단과 오래 지내다보니 반 감독이나 다름없었다. 피칭기계에 공을 넣어주면서 선수들에게 “밀어 쳐”라고 호통까지 쳤단다.

1989년부터 야수, 투수로 나눠 2대가 움직였다. 버스의 수준도 차츰 높아졌다. 좌석배치는 다른 종목과 비슷하다. 감독이 기사 바로 뒷자리. 이어 코치들이 앉고 신참, 중간급, 선참의 순으로 좌석을 차지한다.

해태 시절 김응룡 감독의 버스 군기는 유명했다. 본인이 타는 순간 무조건 출발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휴게실에서 늦장 부리다 버스를 타지 못한 선수도 많았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경기에 진 뒤 타는 것이었다. 남극보다 더 추운 버스에서 선수들은 숨죽여야 했다. 삼성과의 원정에서 패한 뒤 화가 났던 김 감독은 광주행 88고속도로 위에서 버스를 세우고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에게 뛰어오게 한 적도 있었다.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그 선수를 찾는 순간 다른 선수들은 더욱 긴장했다. 감독은 야수와 함께 이동했고, 그 선수는 나중에 투수용 버스를 타고 광주로 왔다. 이 또한 선수들을 다잡기 위한 감독의 전략이다. 이 때문인지 해태는 멀리 원정을 가는 마지막 날 경기에선 기를 쓰고 이겼다.

김응룡 전 해태 감독.

김응룡 전 해태 감독.




○1986년 불타버린 해태 버스

한국프로야구가 성공을 확인했던 것은 1986년 한국시리즈 때였다. 영호남 라이벌 삼성과 해태의 3차전 뒤 해태 버스가 불타면서였다. 상징적 사건이었다. 지금도 누가 어떻게 불을 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냉랭한 사회분위기를 고려하면 한국시리즈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여기저기 해결책을 수소문했다. 4차전을 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여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우리보다 연륜이 높은 메이저리그(MLB) 커미셔너사무국에 연락해 사고수습방안을 물어봤는데 대답이 상상외였다. “걱정스럽다”가 아니라 “축하한다”였다. 그처럼 홈 팬들의 열성이 뜨거운 한국이라면 프로야구의 성공은 확실하다며 오히려 부러워했단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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