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1 사커토크] “착한 민지, 더 독해져라”…“선생님, 재활하며 꿈·욕심 커졌어요”

입력 2012-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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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여자대표팀 정성천 감독(왼쪽)과 여민지가 파주NFC 인근의 한 카페에서 1대1 토크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주|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U-20여자축구 정성천감독 & 여민지

2010년은 한국여자축구의 르네상스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고, U-17 여자월드컵에선 정상을 밟았다. 2년이 지난 지금, 파주NFC에선 U-20 여자대표팀이 또 한 번의 신화창조를 위해 구슬땀을 쏟고 있다. 한국은 작년 U-19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선수권에서 4위에 그쳐 탈락했지만 올 8월 열리는 U-20여자월드컵 개최지 우즈베키스탄이 준비 미흡으로 일본에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출전 기회를 잡았다. 정성천(41) U-20 여자대표팀 감독과 대표팀 에이스 여민지(19·울산과학대)가 1대1 토크를 했다.


선수는 욕심먹고 크지…더 악착같이 OK?
목표는 더 높게…여자축구 레전드가 돼라

생각하는 축구? 알죠! 저 지능 높거든요
U-20 월드컵 생각하면 벌써 몸 근질근질



○소망


정성천(이하 정) : 월드컵까지 얼마 남지 않았네. 17세 때, 여민지라는 이름이 세계에 각인된 그 때의 기억을 다시 살려보자. 우리 목표 뚜렷하잖아?


여민지(이하 여) : 맞아요.


정 : 이제 3번째 훈련이야. 대회 출전이 확정되고 1, 2차 훈련 때는 민지가 부상을 입어 참가할 수 없었잖아. 오랜만에 합류했으니 참 반갑다.


여 : 발등을 다쳐 3개월 간 재활했어요. 이전 훈련 때 언니, 동료들과 훈련할 수 없어 왠지 소외된 것 같았어요. 이제 마음이 좀 풀려요.


정 : 공격 훈련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니까 소외됐다는 생각은 하지 마.


여 :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저희가 아시아 4위라고 보세요? 글쎄, 얼마나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근질근질 해요. ‘전화위복’이란 말을 늘 새기고 있어요.

정 : 6월4일 대회 조 추첨을 하거든. 너희들의 잠재력은 이미 확인했어. 기술도 좋고, 조직력도 대단하고. 누굴 만나든지 뭔가 제대로 보여주자고. 뭔가 이뤄낼 것 같은데? 안 그래?


○추억


여 : 그럼요. 하도 선생님께서 우승, 우승 하시니까 정말 우승도 할 것 같아요.


정 : 민지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써왔던 축구 일기도 잘 알고 있어. U-17 여자월드컵 감동이었잖아. 어린 여자 선수로는 보기 드문 경우였어. 많이 놀랐어. 그런 열정이 피치에서 나오는 것 같아. 일기를 쓰는 정성과 세심함, 꼼꼼함이 그대로 묻어나온다니까. 지금도 일기 쓰고 있니?


여 : 운동할 때만 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재활 치료를 하고 몸을 만드느라 메모 정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작년 U-19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몸이 너무 안 좋았어요.


정 : 그래도 항상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모든 기량을 보여주는 게 발전하는 거야. 언제, 어디서든 생각하고 행동(플레이)하고. 축구에서는 딱 두 가지 길이 있단다. 이기느냐, 지느냐. 많이 이기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야. 우린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했어. 대신 부족한 게 뭔지를 알잖아. 그걸 채워나가는 마지막 과정에 있으니까 지금이 중요해.


여 : 참, 선생님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언제는 무섭고, 언제는 편하고. 계속 변하지 않는 건 선생님 지식? 힌트 아닌 힌트를 많이 주시잖아요.


정 : 아부만 잔뜩 늘어가지고. 사실 너희들 개인 기술을 갑자기 향상시키기는 어렵지. 생각 없는 패스, 생각 없는 컨트롤이 모여 경기를 망쳐. 이를 정확히 반대로 하면 이길 수 있어. 내 말이 너무 어렵나?


여 : 아뇨, 저 지능 좋아요. ^^ 다 알아 들어요.


○다짐

정 :
선수는 욕심을 먹고 크는 법이야. 민지는 너무 착하기만 해. 좀 더 악착같은 맛이 있으면 하는데. 어때?


여 : 사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너무 빨리 오르다보니 목표 의식이 많이 흐려진 것 같아요. 몸도 아팠고, 정신적으로도 지쳐있었고. 그러면서도 빨리 경기는 나가고 싶고.


정 : 민지는 여자축구의 레전드가 돼야지. 17세 때와 지금의 네가 같아서는 안 된다고 봐. 생각 하나하나가 모든 걸 바꾼다니까. 보다 강해져라. 더 높은 곳에 목표를 둬.


여 : 재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생각도 많이 하고요. U-20 월드컵이 정말 큰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꿈과 욕심을 함께 가졌다고 해야 하나?


정 : 내가 프로선수로 뛸 때 언젠가 두 골을 넣고 막판에 교체된 적이 있었어. 난 최선을 다했고,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 역정을 내더라고. 감독님은 “네가 더 뛰고 해트트릭 하면 한 계단 더 오르는 건데, 넌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찼다”고 하셨지. 물론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어. 저 사람 왜 화를 내는지 화도 났고. 그런데 이제 이해할 수 있어. 좋은 기회는 매번 오는 게 아니야. 다 때가 있고, 주어진 시기가 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여 : ‘때’가 바로 지금이겠죠?


정 : 바로 그거야. U-17 여자월드컵 우승 멤버들이 10여 명이야. 우승도, 탈락도 경험했지. 이번 대회가 너희에게는 기회야.


여 : 알고 있어요. 틀림없이 전, 아니 저희들이 그 기회 잡을 테니 믿어주세요.

파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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