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세상 모든 아픔 겪는 이에게 金을 바치다

입력 2012-08-0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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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美유도 사상 첫 金
성학대… 우울증… 자살기도… 코치 도움으로 아픔딛고 재기
“내 과거는 다른 사람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예요.”

미국 최초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케일라 해리슨(22)은 이렇게 확신하고 있다. 그는 이번 런던 올림픽 유도 여자 78kg급에서 홈팬들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은 영국의 제마 기번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해리슨의 과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해리슨은 유도 유단자였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6세 때 처음 유도를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로부터 2년 후 자신의 친구 대니얼 도일이 운영하는 유도학원에 딸을 보냈다. 당시 24세였던 도일은 해리슨 가족과 각별한 사이였다. 해리슨 가족이 바비큐를 먹을 때 늘 도일을 부를 정도였다. 해리슨은 기쁜 마음으로 유아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줬던 도일을 첫 번째 스승으로 모셨다.

유도 선수로서의 해리슨은 화려했다. 해리슨은 15세 전까지 미국 전국대회에서 2번 우승하며 미국 유도의 샛별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자 해리슨의 삶은 끔찍했다. 도일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용해 해리슨을 8세 때부터 줄곧 성추행했다. 당시 해리슨은 워낙 어려서 그게 나쁜 건지도 몰랐다. 스승인 도일이 “내가 이러는 걸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라고 하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의미를 알자 괴로움은 점점 커졌지만 속앓이를 할 뿐이었다. 해리슨은 점점 말이 없어지더니 극도의 우울증에 빠졌고 결국 자살까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 그를 구한 건 용기였다. 해리슨은 용기를 내 동료 유도 선수인 에런 핸디에게 그간의 사실을 털어놨다. 도일은 징역 10년이라는 법의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해리슨은 ‘성적 피해자’라는 주변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해리슨은 고향인 오하이오 미들타운을 떠나 보스턴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고자 했다. 그의 새 코치 지미 페드로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독기를 품은 해리슨은 무서울 게 없었다.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미국에 26년 만에 금메달을 안기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리곤 꿈의 무대인 올림픽까지 정복했다. 그는 “나는 무서울 게 없다. 그 어떤 순간도 내가 어렸을 때 겪은 것보단 끔찍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최초의 유도 금메달리스트는 어린 소년소녀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성적 피해를 당하면 꼭 세상 밖으로 나와 얘기를 해라. 그럼 세상이 꼭 도와준다”고. 맞는 말이다. 해리슨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 알렸던 핸디와 약혼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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