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크] 이광종 “정현철 쟤 왜 저래 하는 순간 동점골 터지더라”

입력 2013-07-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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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8강에 오르며 축구팬들을 감동시킨 이광종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스포츠동아와 만나 대회 뒷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박철우 GK코치, 최문식 수석코치, 이 감독, 김인수 코치. 파주|남장현 기자

U-20월드컵 8강 빛나는 영광
이광종 감독과 코칭스태프들


기성용(스완지시티)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논란으로 침울했던 한국축구에 희망과 활력을 안긴 건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한 아우들의 퍼포먼스였다. 터키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예상을 깨고 8강까지 올라 뜨거운 감동을 줬다. 이광종(49)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힘이 컸다. ‘팀(Team) 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린 태극전사들은 리더를 믿고 따르며 환상적인 조직 축구를 보여줬다. 11일 파주NFC에서 이 감독, 최문식(42) 수석코치, 김인수(42) 코치, 박철우(48) 골키퍼 코치 등 U-20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만나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광종 “정현철 기대한 경합않고 이상한 짓”
최문식 “좀더 제대로 악역 맡았어야 했는데”
김인수 “우리처럼 드라마틱한 팀 또 있을까”
박철우 “항상 노력하고 겸손한 선수 됐으면”



이광종(이하 이) : 힘들었지. 8강전이 끝나고 아이(선수)들을 바라보는데 가슴 찡하더라고. 눈물 안 보이려고 노력했는데, 지금도 짠하네.


최문식(이하 최) : 무뚝뚝하게 ‘수고했다’고만 했는데. 어떤 이야기가 더 필요했겠어요?


김인수(이하 김) : 말이 필요 없죠. 고생했고, 그저 고마울 뿐이죠.


박철우(이하 박) : 그 덕택에 당당하게 어깨 펴고 귀국할 수 있었잖아. 귀국에 앞서 마지막 날을 보내며 스태프들과 함께 한 맥주 한 잔의 맛은 기가 막혔어요. 이럴 때가 또 있겠죠?

U-20월드컵을 앞두고 조별리그 통과도 어렵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도 있었다. 대회 직전에는 몇몇 선수들이 부상 등으로 이탈했다.


이 : (신문을 보고)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냐? 약체라는 이야기가 기분 나쁘지 않냐? 한 번 경기장에서 역사를 써보자고 했는데. 그래서 훨씬 기억에 남네. 너무 몰아쳤나?


최 : 감독님 지시대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려고 했죠. 집중하고 잘 준비하자고 계속 이야기했는데. 선수들 머리가 좀 아팠을 겁니다.


김 : 알아서 뭉쳤잖아요. 주장 (이)창근이가 잘해줬고. 자율 미팅도 자주 하고. 따로 지적할 게 없더라고요.


박 : 약체로 꼽히니까 마음은 편했죠. 우리 성적을 놓고 뭐라 하진 않겠네. 안도한 건 아닌데, 부담은 덜 됐어요.

결국 이광종호는 큰일을 해냈다. 특히 콜롬비아와 16강 승부차기 승리는 엄청났다.


이 :
실감 못했지. 외신이 콜롬비아를 두 번째로 높은 우승 후보로 꼽았으니. 솔직히 콜롬비아전만 수비에 전념시켰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만 먼저 골을 넣었네.


최 : 공항 입국장을 나갔더니 엄청난 카메라며, 기자들이 몰렸네. 한 발 더 나갔다면 어땠을까 왠지 아쉽기도 하고.


김 :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후련했어요. 승리, 무승부, 패배, 승부차기 승, 승부차기 패. 저희처럼 드라마틱한 기억을 가진 팀이 또 있을까요?


박 :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난 ‘냄비 근성’을 이야기하고 싶어. 확 달았다 식지 않고 평소에 청소년대표팀에도 관심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선택의 연속이었다. 옳은 판단도, 지우개로 지워버리고픈 순간도 있었다. 지금이야 ‘신의 한수’로 통하지만 이라크와 8강전 연장 후반 막판 터진 정현철의 동점골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 만약 이라크전 승부차기에 좀 더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콜롬비아전에서 킥 방향이 노출된 마당에 다른 방향을 지시했다면?


최 : 선수단장으로 오셨던 허정무 부회장님께서도 ‘너희 중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한다’고 하셨고, 제가 악역을 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못했죠. 좀 더 잔소리 했으면 4강에 올랐을까?


김 : 선수들이 잠을 많이 설쳤다고 해요. 더 편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박 : 골키퍼들을 더욱 철저히 준비시켰어야 했는데 계속 먼저 골을 내주며 끌려갔으니. 마음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했어요.

그런데 정현철의 투입은 언제 계획됐을까. 또 승부차기 직전, 벤치 상황은 어땠을까.


이 : (정)현철이가 키가 커서 공중 볼 경합에 기대를 걸었지. 그런데 이 녀석이 이상한 짓을 하더라고. 시간 없는데 엉덩이를 뒤로 빼고. 앞으로 가야 하는데, 초조했지. 다행히 ‘쟤, 왜 저래?’ 싶을 때 골이 터졌고.


최 : 연장전 2-2에서 (나)성수 투입을 지시받고, 불러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죠. 관중 함성 소리에 깜짝 놀랐는데, 실점했지 뭡니까. 멍하니 있을 때 감독님이 ‘현철이 오라고 해’라고 하셔서 겨우 정신 차렸죠. 얼마나 감동을 주려고 그랬는지.


이 : 승부차기 때 ‘애들이 많이 떨겠다’란 생각만 들었어. 이라크 골키퍼가 우리 킥 방향을 알 텐데. 내색도 못하고 속만 끓였지.


박 : 창근이한테 한 마디만 했어요. 이라크 5번이 키커가 되면 먼저 움직이지 말고 끝까지 기다리자고. 그런데 키커가 차기도 전에 먼저 넘어졌죠. 유일한 지시였는데 그물이 흔들렸어요. 하긴, 제가 골키퍼라도 그런 지시는 기억 못했을 거예요.

이광종호의 선전에 팬 심(心)은 분명하다. 현 코칭스태프에게 내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까지 지휘봉을 맡기라고.


이 : 우리 팀은 ‘열정’이었지.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야. 패배가 있어 승리도 더 빛났잖아.


박 : 정말 저희는 ‘하나’라는 힘을 보여줬죠. 뭉치고 어우러지고.


최 : ‘조직’도 빛을 발했어요. 하나가 됐고, 열정을 보였고. 존재만으로도 기억될 것 같아요.


김 : ‘희생’의 진정성을 보여줬어요. 제가 현역 때 수비수로 뛰다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가 적었는데, 우리 수비수들에게도 동료들이 빛나게끔 뒤를 잘 받치자고 말했죠.
오랜 시간 동고동락해온 제자들에게도 하고픈 말이 있다. 당장은 기약 없이 헤어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제자들이 해야 할 숙제가 담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이 :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아이들도 많이 느꼈을 거야.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각자 개인 능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여줬으면 하는데.


최 : 항상 동료와 주변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더욱 큰 재목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


김 : 뚜렷한 사고와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단점까지도 장점으로 만들 수 있도록.


박 :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지금이 최대 위기라고도 생각하죠. ‘됐다’ 생각한 순간, 더 이상발전은 없으니. 항상 노력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선수가 됐으면 해요.

파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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