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도의 레전드’ 장미란. 동아닷컴DB
도하대회 컨디션 난조 실패가 밑거름
AG 출전 3번째 만에 첫 금메달 획득
한국역도의 ‘레전드’ 장미란(31·장미란재단 이사장)은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장미란재단 일을 돌보며 틈틈이 경기장 곳곳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한다. 역도와 펜싱, 배구 종목에 국한됐던 것이 수영과 야구까지 확대되고 주목받자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9월 26일 동메달을 따낸 박태환을 만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20개나 따냈다. 정말 대단하지 않느냐”고 칭찬하기 바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최중량급(75kg 이상급)을 두루 제패했던 한국역도의 간판 장미란은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팬의 입장에서 보게 돼 좋을 줄만 알았는데 후배들 경기를 보니 가슴이 떨려 직접 뛰고 싶은 마음”이라고 떨린 목소리를 전했다.
● 맹장 수술 직후 따낸 은메달, 그리고 달랐던 무게의 도하 은메달
장미란은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아시아 최대축제인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당시 개최국은 한국의 부산이었고, 장미란은 역도를 시작한지 채 4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경력을 갖고 있었다. 역도계에서는 주목할 만한 기대주였지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사실 출전 자체가 기적 같았다. 장미란은 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맹장이 터져 급히 수술을 받았다. 힘을 한데 모아서 쓰는 역도의 특성상 출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코치진은 혹여나 다칠까봐 안절부절이었다. 하지만 장미란은 어렸고, 겁이 없었다. 그녀는 “맹장수술 하고 한달을 회복하고 나갔는데 기록이 좋아서 선생님들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장미란은 용상에서 155kg을 들면서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도하아시안게임은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장미란은 이미 국내 최고스타로 발돋움했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핏빛 투혼을 펼치며 은메달을 따냈고, 최선을 다한 모습과 온화한 미소에 온 국민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여줬다. 1년 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첫 정상에 오르며 도하아시안게임의 금메달 유력 후보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대회 전 허리를 삐끗했고, 용상 저크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건 급격한 컨디션 난조였다. 그녀는 “한 달 전에 세계선수권대회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렸다. 그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몸 상태가 정말 안 좋았다. 기록은 준비한 것보다 잘 했는데 아무래도 은메달의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장미란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3관왕을 한 수영의 박태환(25)에게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금메달을 못 딴 설움보다는 메달을 따지 못한 다른 선수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실패를 거울삼아 2008베이징올림픽과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준비를 잘 할 수 있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그랜드슬램 해프닝과 은퇴
장미란은 광저우 대회에서 3번째 출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최고 기록을 갖고 있던 중국의 멍수핑이 용상 3차시기에서 실수를 한 반면 장미란은 안정적으로 바벨을 들어올리며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대회 출전까지 장미란은 부상과 힘든 싸움을 펼쳐야 했다.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장미란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이 없어서 그 점을 꼭 집어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당시 힘든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었다. 2009년 이후 한 계단씩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시안게임을 맞아 다행이었다”고 자신을 낮췄다.
재밌는 일화도 있다. 장미란은 이날 금메달을 통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줄 알았다. 모든 언론에서 그랜드슬램을 받아썼다. 하지만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따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적이 거의 없었다. 2011년 평택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실제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광저우 때 그랜드슬램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고 활짝 웃었다.
인천|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