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남자배구, 혹독한 올림픽 예방주사

입력 2015-07-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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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배구가 세계무대의 높은 벽을 또 다시 실감했지만, 2그룹에 잔류하며 희망을 이어갔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달려있는 2015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예방주사를 단단히 맞았다. 스포츠동아DB

월드리그 D조 최하위…간신히 2그룹 잔류
주전 세터 한선수·전광인·신영수 등 이탈
불가피한 세대교체 속 조직력·파괴력 흔들
26일부터 올림픽 본선티켓 걸린 亞선수권
새 집행부 프로와 소통…문성민 출전 가능


한국남자배구가 세계무대의 높은 벽을 또 한 번 실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3그룹 추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모면했다. 3년간 대표팀을 이끌었던 박기원 전 감독에 이어 새로 지휘봉을 잡은 문용관 감독은 ‘스마트배구와 5승’을 2015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의 목표로 잡았지만, 현실은 D조 최하위였다. 한국은 5일(한국시간) 벌어진 대륙간라운드 D조 최종 12차전 원정경기에서 프랑스에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했다. 프랑스에 홈·원정을 포함해 4연패를 당하는 등 2승10패(승점 8)에 그쳤다. 프랑스는 12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일본과 체코(이상 5승7패)가 각각 2·3위에 올랐다.

월드리그는 세계랭킹에 따라 A·B조를 1그룹, C·D·E조를 2그룹, F·G·H조를 3그룹으로 편성하고 2그룹 전체 최하위를 다음 시즌 3그룹으로 강등시킨다. 2그룹 12개국 가운데 C조의 쿠바가 3승9패(승점 7), D조의 한국이 2승10패, E조의 포르투갈이 1승11패(승점 5)로 각각 조 최하위에 머물렀다. 승수∼승점∼세트득실률의 순서에 따라 한국은 간신히 2그룹에 잔류했다. 포르투갈이 3그룹으로 밀려났다. 대표팀은 당분간 쉰 뒤 26일부터 이란에서 벌어지는 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 대비한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걸린 대회다.


● 뜻하지 않은 세대교체를 택한 남자배구대표팀

지난해 폴란드 세계선수권과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했을 때와 이번의 남자배구대표팀 명단에는 차이가 많았다. 우선 주전 세터의 변동. 한선수(대한항공)가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다. 한선수가 지난 몇 년간 대표팀의 기둥으로 활약했지만, 이제는 프로 3년차에 접어드는 이민규(OK저축은행)에게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윙 공격수 자리에도 변화가 있었다. 블로킹에서 장점이 많은 박철우(공익근무)가 빠진 대신 서재덕(한국전력), 송명근(OK저축은행), 최홍석(우리카드)이 그 자리를 메웠다.

V리그에서 외국인선수가 주로 맡는 라이트 포지션은 우리 남자배구가 국제무대에서 고전하는 근본적 약점이다. 높이와 파괴력에서 상대를 제압할 대포가 없어 리시브가 흔들릴 경우 2단 공격이 쉽지 않다. 오랫동안 레프트를 지켜주던 전광인(한국전력)도 이번에는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유럽원정에 동행하지 않은 채 소속팀으로 복귀해 재활 중이다.

2014∼2015시즌 후 선수들의 개인사로 대표팀은 월드리그를 앞두고 손발을 맞춰볼 시간도 많이 갖지 못했다. 최민호(현대캐피탈), 곽승석(대한항공)의 경우 결혼과 신혼여행으로 대표팀 합류가 늦었다. 라이트를 맡아줄 것으로 기대됐던 신영수(대한항공)는 부상 때문에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유광우(삼성)도 유럽원정에는 빠졌다. 대표팀 구성이 어수선한 데다 멤버가 들락날락하다보니 문용관 감독이 원하는 ‘스마트 배구’는 꿈도 꾸지 못했다. 더 뼈아픈 사실은 조직력, 파괴력, 높이, 스피드 등 어느 부분에서도 우리 배구가 내세울 장점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형 배구를 만들지 못하면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은 어렵다.


● 다행스러운 프로팀과 대표팀의 소통

대한배구협회는 4월 27일 공석이던 회장을 새로 뽑았다. 박승수 회장직무대행이 임태희 전 회장이 남겨둔 임기를 책임진다. 새 회장은 집행부도 새로 꾸렸다. 대표팀은 신만근 전무와 김찬호 경기력향상위원회 이사가 책임진다. 전임 집행부는 프로팀과의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다. 한국배구연맹(KOVO)과의 불협화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다행히 새 집행부는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신 전무가 프로구단의 사무국장이 모이는 실무회의를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선수와 지원인력, 돈을 가진 프로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행보였다. 프로구단들도 협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젊어진 V리그 남자부 감독들도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소속팀에 불리하더라도 대표팀이 원한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자세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과 우리카드 김상우 감독은 대표팀 구성에 이미 전폭적으로 협조했다. 두 감독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월드리그 출전은 힘들었을 것이다.

향후 대한배구협회와 KOVO의 상생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는 문성민(현대캐피탈)이 될 듯하다. 현역 남자선수 가운데 대표팀에서 가장 필요한 라이트 공격수지만, 2년 전 월드리그 한일전 도중 당한 부상 이후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고 있다. 당시 그의 부상과 치료과정에서 대한배구협회가 보여줬던 일처리에 실망한 구단 고위층에서 ‘협조 불가’를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집행부가 아니고 협조의 명분도 있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는 참가할 전망이다.

프로구단이 대표팀에 원하는 것은 선수들의 철저한 관리다. 뽑아만 놓고 방치하지 말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잘 관리해달라는 얘기다. 또 합리적 운영을 통해 소수의 대표선수가 모든 대회에 참가하는 대신, 대회의 비중에 따라 다양하게 선수를 구성하는 상비군 제도를 도입해 서로의 부담을 덜자고 한다. 또 전력균형을 고려해 차출하는 인원을 팀마다 똑같이 한다면 프로구단에서 거부할 명분도 없다. 마지막으로 대표팀 사령탑이 후배 감독들에게 강요보다는 협조를 구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진정한 상생은 시작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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